“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16:19-27).


  ‘겉사람’(ego)을 버린 거지(푸토코스) 나사로(속사람)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완전한 무욕(無慾), 무심의 상태이다. 자색 옷을 입고 이원성에 빠져 있던 부자는 자신 안에서 나사로를 보고 내면의 세계가 새롭게 열림으로 자신의 신성을 알게 되는 비유이다. 나사로는 헛되고 헛된 육체가 자기라고 하는 개인성(ego)을 버리고 불변하는 자기’(神性)를 찾았기에(16:25), 아브라함과 하나(One)가 되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었다. 이러한 不二의 진리를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16:31).


  나사로는 너와 나의 분별 시비’(ego)가 사라진 不二의 생명’(One)을 깨달아 비참한 경지에 처해있었지만 부자에게 아무런 적개심도 품지 않았다. 또한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와 같이 거울 안의 허상을 보는 불완전한 눈이 사라져 내면의 눈’(靈眼)이 하나(One)의 실상인 영원한 생명(神性)을 뚜렷하게 본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겉사람(ego)의 자색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거지인 속사람(그리스도, One)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