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예수께 이르되이스라엘에서 24선지자가 말하였거니와, 저들이 모두 주님에 대해 말했나이다.” 예수께서 저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 눈앞에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죽은 자들에 대해 말하는 도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현존의 예수(진리)는 전체 속에 있기 때문에 진리를 모르는 24선지자들이 말한 예언과 탄생,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은 의미를 상실한다. 예수의 생애와 죽음이 예언적 약속의 성취라는 사상과 관련된 기독론은 도마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는자기 보다 먼저 온 자’(거짓 나)들을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다( 10:8). 제자들은 진리를 자각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살아있는 자 ' (참나)를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죽은 자'(거짓 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수는 구약 예언의 성취자가 아니라(24:27),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으로서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시며 성경 이 증언하고 있는 현존(現存)의 영()이다(고후 3:17). 보이는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보이지 않는 영원한 그리스도만 실재한다(고후 4:18).


인도 철학자 상카라는 '신체가 재로 돌아갔을 때에도 자기 자신의 아트만(참나)은 단절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트만의 본질은 현존(現存)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현대물리학과 모든 종교에서 ' 지금 여기'(Eternal Now )를 강조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는 마음의 산물에 불과할 뿐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벧후 3:8).우리가 스스로 내면의 생명’(참나)을 깨닫게 될 때 눈앞에 있는 불생불멸의 살아 있는 예수(진리)를 알게 되지만, 그것을 무시하면죽은 것’(거짓 나)인 세상물질의 노예가 된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 이다”( 14:9 )고 하신예수(Logos)의 세계’()는 밑도 없고 끝도 없는 전체성(One)이며, 가장자리도 없는 무한한 생명이다 (無量無邊). ‘우주적인 예수(One)의 말은 과거 선지자들의 이원적인 말 (ego)과는 본질상 차이가 있다


도마와 다르게 마태(1:22)와 누가(24:44)는 예수의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진리)을 보지 못 하고, 메시아로 부각하기 위하여 그가 바로 예언서에서 예언한 분임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진리를 바로 보기 위하여 우리는 문자와 말 중심의 육적인 눈(ego)에서 벗어나보는 것을 보는 눈’(관찰자, 10:23)인 영적인 눈(靈眼, One)이 열리도록 해야 한다(고후 3 :6, 고전 1:17). 또한 내면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이 현존하며( 10:20), 보편적인 성령(그리스도)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의 차별(ego)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廓然無聖, 7: 14- 15).


내면의 하나님의 현존과 그리스도를 체험하는신비한 합일’(神意識, One)을 위하여 솔로몬처럼 모든 것이 평화와 명상 속에 쌓이는 고요함 즉 공(, 솔로몬의 지혜 18: 14-15)의 상태가 요구된다( 46:10). 예수가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14 :28)고 하신 말씀은 이미 내면에 깃들어 있으며, 우리와 하나(One)가 된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이다. 그러므로 침묵 속에 거하면서 내면의 그리스도(신성)를 체험 하는 것이 진정한 영적 예배이다(3:4). 영적 예배를 통한 영원한 그리스도(신성) 체험으로 기쁨과 평안한 마음이 될 때 모든 환경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내부에 있는 그리스도(신성)를 깨닫게 될 때 모든 불완전, 부조화 그리고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며,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 신(부처)과 하나가 된다(법화경). 우리는 내면의 진리 깨달음을 방해 하는 이원성의 눈(거짓 나)이 있다면 "빼어 내버리고"( 5:29), 둘이 아닌 진리를 자각하여 불생불사(不生不死)의 그리스도(참나)가 되어야 한다(고후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