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목 길'

                                                           글,   김 의 준 장로

  지하철 출구를 빠저나온 사나이
  시구문 근처에서 주변을 살핀다
  허름한 건물 틈으로 난 좁은 골목이 얼핏 눈에 띄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쪽으로 빨려든 듯 사라진다

  골목 안은 전혀 다른 시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화려한 문명의 접근도
  약삭빠른 세월의 통행도 허용되지 않는
  부동의 시간 속에
  움푹 파인 옛 눈망울만
  방문객을 주시하고 있다

  끊길듯 이어지고,
  막힐듯 뚫려 있는 골목길! 
  그 휑한 천연 동굴이 
  태초의 언어를 토해 내고
  또한 스스로 반향한다

  사나이는 구불구불 창자를 더듬는 내시경처럼
  좌우를 살피며 골목을 간다
  길 옆 댓돌 위에 누렇게 바랜 흰 고무신이 놓여 있다
  안방 문고리가 손에 잡힐듯 매달려 있고
  부억 찬장 안에 놓인 숟가락도 선명하게 들여다보인다

  이 골목길은
  그냥 길이 아니다
  언어의 자궁으로 연결된 생명의 길이다
  골목 어딘가에
  새봄에 뿌릴 씨앗처럼
  토박이 언어가 박혀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