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지배란 무엇인가?

로마서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신자는 죄가 지배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우리 안에 심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죄의 지배에는 지난 시간에 이야기 한 것처럼 죄의 절대적 지배 아래 놓인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과 죄의 상대적 지배
아래 놓은 거듭난 사람으로 나뉜다.
죄의 절대적 지배 아래 놓은 사람들은 자기의 욕심대로 행하고 거침없이 자기의 욕망과 악행을 따라 사는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죄의 상대적 지배에 놓인 사람들은 절대적 죄의 지배에 놓여 있지 않는 신자들에 해당한다. 이들은 성령과 생명의 법에 영향력을 받지만 영적 생명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가 방치하여 자신의 죄의 잔존의 영향력이
득세하여 실제 하나님의 영이 지배하였어도 불법적인 세력이 신자의 영혼을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죄의 지배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성질은 무엇인가?

1. 죄의 지배의 성질
   부당한 거역이며 악이고, 영혼의 파멸이다. 즉 신자가 죄에 지배를 그 영혼에 받으며 사는 것은 부당한 거역이며
   악으로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1)부당한 거역이란
    신자는 하나님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혜와 생명의 원리를 심으셨다.
    그 원리에 따라 살기만 하면 그 생명력이 극대화 되어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죄와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원리를 따라 살지 않고 영적인 사망의 죄악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
   때문에 자신 속에 있는 죄의 잔존이 득세하여 신자의 마음과 영혼을 불법하게 강탈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죄의 지배를 받는 불신자의 영혼 속에 지배는 신자의 죄보다 더 견고하다.      
    신자 속에 있는 죄의 지배는 불법한 거역이기 때문에 생명의 은혜의 지배가 역사하면 단번에 허물어진다.
    신자의 죄의 지배는 불신자의 죄의 지배와 구분된다.
    인신매매 자들이 인신매매 당한 여자나 남자에게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철저하게 자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구타와 강간 등으로 인간이하의 삶을 알게 하고 이젠 끝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자기가 처한 삶에 적응하고 소망이 없게 한다.
    죄는 두려움과 달콤함으로 우리를 다스린다. 그래서 부당함에 거역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죄의 지배이다.

2) 죄의 지배는 악이다.
   죄의 지배에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곧 하나님을 욕보이고 구원의 계획을 멸시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도 기쁘고 즐거운 것만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한 것처럼,
   죄의 지배 또한 달콤한 것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죄의 궁극적 목적 1) 하나님의 대적  2)신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자의 영혼을 완벽하게 장악할 때까지 죄의 지배력의 영향력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이미 그리스도의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이미 거듭남을 체험
    한 자이기에 죄의 지배와 죄가 주는 즐거움과 쾌락을 느끼면서도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지배를 받는 신자의 상태는 불신자의 상태보다 훨씬 불행하다. 불신자의 상태는 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
   에 또 죄의 본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죄를 먹고 마시며 즐긴
   다.
   그러나 신자는 이미 죄의 본성을 떠나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를 체험한 자이기에 죄가 주는 잠깐의 쾌락과 기쁨을
   받아먹으면서도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한 것처럼 여기서 삯은 원어상 주종관계의 삯(주인이 노예에게 주는 댓가, 혹은 피고용인
   이 고용인에게 받는 댓가, 청부관계 등)으로 죄의 지배를 받은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받는 것이 사망이라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신령한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주일날 예배에 나와서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고백이 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예배를 위해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받는 은혜는 느끼지 못하고 사교적인 우정관계의 만남과 교제를 이루며 신앙 생활
   하는 신자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주일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으로 인해 기쁨을 느껴 본적 있는가?
   하나님 앞에 대적함이란 바로 그 분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속의 죄와 더불어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나 중심적의 삶을 말한다.
   신자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죄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경쾌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무엇인
   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나님도 없고 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어찌 행복하단 말인가?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애통
   하고 통탄하지 못하는 영혼이 안타깝지 않은가?

3)죄의 성질 중의 다른 하나는 바로 영혼의 파괴이다.
   은혜의 질서가 파괴되면 죄를 대적하고 절제하고 분별하고 제어하는 모든 능력이 사라진다.
   (무정부상태의 폭동 등 - 방법: 계엄령 선포)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죄가 들어와 정착하여 지배권을 가지면 은혜의 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죄의 분별력을 무디게 한다. 그래서 인간적 생각에 사로잡히게 하여 합리화시킨다. 은혜의 질서를 무너뜨리게 하여
   성령의 지시보다는 죄의 지시에 따르게 한다. (세상의 전쟁방법을 살펴보라! 죄의 역사도 마찬가지!)

2. 죄의 지배의 특성
   1)순종을 통해 죄는 지배력을 갖는다.
     아무리 많은 유혹이라도 내가 그것과 싸우고 있는 중에는 결단코 죄가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죄는 순종을 통해 그 지배력을 행사한다. 은혜도 마찬가지로 많은 은혜의 자리와 상황과 깨달음과 경험이 있어도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은혜가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와 더불어 싸우고 있을 지라도 우리가 순종하지만
     않는다면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더라도 우리를 결코 지배하지 못한다.
     그래서 죄는 우리를 순종하게 하도록 강압, 속임, 유혹, 달콤함을 끊임없이 제공하여 그 죄를 받아들이고 순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죄의 능력이라는 것은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이지 나의 의지와 지성을 강압하여 나를 죄의 지배 아래
    로 들어가게 하지는 못한다.
    죄의 지배는 반드시 우리가 순종함으로 그의 지배력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 유혹을 오랫동안 집요하게 받으면
    순종하게 될 확률이 높게 된다.(정말 싫은 남자의 프러포즈는 결국 오랫동안 집요하게 하면 성공한다는 원리, 물고기
    의 입질원리)
    죄와 맞서고 다투는 중에는 죄가 지배력을 가지지 않지만 내가 순종할 때야 비로소 죄의 지배력에 놓이게 된다.

3. 죄의 지배의 환경
   죄가 지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환경이 있어야 한다.  신자가 성령의 은혜의 통치를 떠나게 되면 죄의 지배아래 놓이
   게 된다. 죄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의 환경은 바로 성령의 은혜가 점점 내 안에서 사라지거나 떠나게
   되는 환경이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기 전에 죄는 기다린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가 서서히 하나님을 찾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세속적 관심과 유혹에 끌릴 때 까지 죄는 우리를 기다린
   다. 그리고 영적인 신호가 오면(주일날 은혜 못 받고, 경건생활, 영적생활, 신앙생활 등한시 할 때)
   죄는 물밀듯 우리를 향해 밀려온다.
   그리고 죄의 지배 아래 놓이게 유혹한다. 게으름은 적이 내 안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주는 스파이다.
   태만과 게으름과 나태함, 부주의함은 죄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이 죄가 들어오게 하는 원인이 된다.  
   영적 독감 바이러스이다.
   죄의 지배 아래에 있을 때에도 신자에게는 불신자에게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과 깨달음이 가끔씩 나타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은혜의 아래에 있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경고이며 은혜의 자리에 나오게 하는 성령의 깨달음이다.
   죄의 지배아래에 있는 신자는 이러한 은혜의 경험이 간헐적이나 은혜의 통치아래에 있는 신자는 늘 성령의 은혜 속에
   서 거하게 된다. 죄의 지배 아래 있을 지라도 내가 신자이며, 하나님의 사람이란 것을 자각한다.
   하지만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고 영적 자만에 빠져 계속적인 죄의 지배아래에 거하면서 간헐적으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 그대로 죄의 지배 아래에 머무른다.  신자에게 죄의 지배와 은혜의 지배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두개의 삶을 살수 없고 오직 하나의 지배만 받을 수 있다.(마6:24)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세상에 살면서 죄가 많고 죄의 지배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어떻습
   니까? ”

  그러한 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버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랑에 하나님을 끼워 넣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의 하나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다.(마6:24)
  신자가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경험하고 성령의 은혜의 통치를 유지
  하도록 말씀과 기도로 영적생활을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죄 앞에 백기를 들고 영적 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우리 시대의 신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가 아니라 경건의 모양마저도 잃어버린 시대이다.
  (딤후3:5)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바로 나로 인한 것임을 알고 그것을 묵상하며 그분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갈2:20)
예배를 드리는 데 난 왜 은혜를 못 받는지를 고민하고 하나님께 애통해야 한다. 분명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예배를
  통해 은혜의 모든 기회를 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자가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안은 예배, 말씀,기도 등의 성령의 은혜의 수단에 동참하지 못한다.
  예배, 말씀, 기도 등은 은혜의 지배에 놓여 있을 때 그 은혜가 충만한 것이다. 내가 지금 그것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지금 죄의 지배아래 놓여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4. 죄의 지배가 어떻게 발전하는가?
  1)죄에 대한 확신을 무뎌지게 한다.
    은혜 아래 있는 신자들도 죄를 진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신자는 죄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다.
    은혜의 통치 아래 있는 신자에게 죄가 오면 분명한 죄책감을 통해 분명하게 죄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죄책감은 무모하게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은혜도구이다.
   그러나 죄책감을 상실한 사람은 바로 양심에 화인 맞은 죄의 지배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죄가 우리 가운데 들어오면 죄에 대한 생각을 제일 먼저 확신하지 못하도록 죄책감을 무뎌지게 한다.

  2)죄에 대해 친근하고 민감하게 한다.
    사고와 정서와 의지를 지배하여 죄에 대한 무지와 친근감 속에서 죄를 오히려 더 원하게 된다.
    죄에 대해 무뎌지고, 죄책감이 점점 사라지고 나면 오히려 그 죄를 즐기고 죄가 찾아옴에 민감하여 그것을 즐기게
    된다. 신자일지라도 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 오히려 그 죄의 지배에 빠져 즐기게 된다.

    문제는 신자는 자기가 죄의 지배아래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자가 죄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생겨나는 위험한 징후들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이야기 하자!
    이부분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로마서 4~8장을 읽기 바란다.
    특히 오늘 나눈 부분은 로마서 5,6장에서 사도바울이 강조하고 있다.

    상담과 더 깊은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은 권도사에게 연락바란다.

*이 설교는 "김남준 목사님의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책을 정리하면서 설교화 한것임을 다시한번 밝혀둔다!"

* 컴선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1-01 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