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빨리 써야 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을 기억해서 쓰려니 힘듭니다.


2006년 올해의 장마는 유난히 길고 지루했다.
피해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방송에서는 일제히 기상 정보를 특보로 내보내며 피해 상황을 보도하기 여념이 없었고 장마가 끝나 갈 때쯤에는 어김없이 수재의연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수해지역에 보인 관심은 아주 잠시였다. 아니, 만약 내가 이 수해지역에 자원봉사를 나가지 않았다면 그 정도의 관심이면 충분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수해복구자원봉사대에 속해 그곳에 도착해서 나의 그러한 안이한 생각들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장마가 끝나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와 찜통 같은 무더위를 보낼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내가 접한 진부면만 하더라고 여전히 시간은 장마철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의외로 많은 청년들(전도사님 외 청년6명)이 쉽게 동참해 주어 우리는 8월 11일부터 12일까지 1박2일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진부 중앙교회와 연계해 그 동네의 피해본 감자밭의 감자를 수확하는 것이었다.

평창에 도착했을 때, 피해의 현장을 본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평소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심했기 때문이다. 도로가 끊기고, 토사가 내려와 농작물을 다 쓸어버리고, 몇 백 년 된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도로에 올라와 있고, 정리가 된 마을에서도 자갈과 모래들이 바닥을 덥고 있었다.
정말 그때에는 ‘하나님도 무심하시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시내에 걸려있는 갖가지 플랜카드를 통해 얼마나 수해복구 자원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지역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플랜카드였다.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봤을 때,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셨듯이 자원봉사자들 또한 보내시어 일을 주관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기도로 준비했다.
‘하나님, 우리의 헌신적인 봉사가 상처받은 아저씨에게 조금이나마 치유되게 해주세요. 또한 우리의 손길이 도움이 되어야지 피해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강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하고 복구 작업에 돌입했다. 난생 처음해보는 호미질. 우리가 언제 감자를 제대로 캐볼 일이 있었겠는가. 우선 덮여 있는 비닐을 벗기고 V자 형태로 왔다갔다하며 호미질을 해야 감자가 상하지 않는다는 주인아저씨의 강의를 듣고 시작했다.
처음은 좋았다. 모두들 누가 더 빨리 캐는지 시합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 가며 한 두 개씩 모습을 들어 내는 감자들에 너무 신기해했다. 하지만 30분, 1시간이 지나가며 말수는 적어지고 묵묵히 땀을 흘려가며 감자를 캤다. 다행히도 첫째 날에는 햇빛이 강하지 않고 약간의 비가 내려서 시원하게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께서 모닥불을 피워 감자를 구워주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마 그 때 먹은 감자의 맛은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의 검게 그을린 피부. 항시 무뚝뚝함을 지키시는 아저씨. 하지만 가끔 “피식”웃어주시는 모습 속에 말씀은 안하시지만 많은 상실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요즘 한참 미국과의 FTA 협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농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정말 피땀 흘려 거두어낸 결실이 싼값에 들여오는 수입산에 밀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쭈그려 앉아 호미질을 하고 그것을 한곳에 옮기는 아주 단편적인 일만 했지만 온갖 근육통으로 고생을 했다. 정말 책상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세며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는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감자를 캐며 너무 힘들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 하나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듯이, 너도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기독교인이라면 쉽게 알고 있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요즘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여유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활동을 마치고 청년들과 아저씨는 둥글게 손을 잡고 한마디씩 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있으실 줄 압니다. 아저씨를 비롯한 모든 수해민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빨리 회복되게 해주세요. 올 가을 수확할 것은 없지만 그 열매보다 더한 것들로 채워주세요.’

마지막 아저씨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여러분은 꼭 성공하실 꺼예요.” 하나님을 모르시는 아저씨였지만, 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그 말씀은 지금까지의 우리 활동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 컴선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1-01 1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