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4호  --


우리 동네 우리 교회




교회당이 동네 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의 지역적 책임과 사명 때문이다. 중세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자리잡고는 하였다. 그것이 수도원으로 혹은 기도원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여 일반 민중들과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교회를 창립하신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셨다. 이 교훈은 교회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알게 하신 것이다. 소금의 생명은 그 대중성에 있을 것이다. 빛 또한 세상을 비추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세 제자와 동행하셔서 변화산에 오르신 적이 있으시다. 산 정상에서 환히 변화되신 예수님, 그리고 거기에 동참하신 모세와 엘리야를 목격한 제자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며 산 아래서의 책임과 사명을 깜박 잊은 적이 있다.

교회 즉 성도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 어느 한 순간도 민중 속에서의 교회의 책임과 사명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민이 필요로 하는 교회,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될 교회라야 교회다운 교회이다. 교회가 기존 교인만을 위한 것이라든지 그들의 필요에만 존재가치를 둔다면 유대인들에게 있던 회당(시나고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최근에 교회당 건축에 있어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것을 더러 목격한다. 대개 사람들이 자기 집 이웃에 예배당이 건축되는 것을 반대하거나 싫어한다. 강남의 어느 교회는 기초 토목공사 중에 공사가 중단되어 오랜 기간 흉물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란다. 반대하는 이유 중에는 일조권, 혹은 교통혼잡, 공사의 위험으로 일어날 수 있는 피해 일수도 있지만 거의 교회당이 있으므로 예상되는 부담스러운 일들 때문이다. 교회가 지역에 대한 사명을 망각하고 교회 자체의 이기주의에 빠진 모습에서 주변 이웃들이 실망한 탓이다.

물론, 더러는 교회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발생되는 일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당한 기간을 교회들이 주변 이웃에게 소금의 맛을, 빛의 사명을 감당치 못한 까닭이다. 교회는 동네의 피난처이어야 하고, 안식처여야 하며, 구원을 행하는 노아의 방주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 남도교회는 이웃과의 관계가 밀접하여야겠다. 교회를 이 지역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의 문은 늘 열려 있어야 하며 지역주민을 향하여 우리 모두의 마음도 열려 있어야 한다.

이웃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여야 한다. 그리고 강도 만난 것 같은 이웃에게 치료와 보호와 구원의 손길을 펴야 한다.

"이 교회는 이 지역 주민 여러분의 것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교회의 힘을 필요로 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들의 소리에 응답하자.

제발, 우리 교회만이라도 교회 주변의 사람들이 "꼭 있어야 할 교회", "이웃이 필요로 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게 하자.

더 나아가 "우리 집 곁에 교회당을 지으라"고 너도 나도 요청하게 되는 교회, 정말 이 지역이 사랑하는 교회로 가꾸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