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2호 <1997.5> --


- 가족탐방 -

도성현 장로님 댁을 찾아서


심백섭 (서강대 교목실 근무)




탐방팀이 교회에서 모여 도장로님 댁을 찾아나선 시간은 어느덧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4월 의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사당동 대림 아파트 7동 104호를 찾아 언덕진 고개를 올라가는 동안 아파트 주번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그 경치에 감탄하는 순간 어느새 우리는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다.

대전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 가족 만을 빼고 장로님 내외와 큰 아들내외 그리고 막내 아들 내외와 어린 손자 손녀까지. 화목해 보이는 대 가족이 모여 있는 가운데 즐거운 탐방이 시작되었다.

남도교회의 시작부터 함께 하신 도장로님은 전라도 신태인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셨다 .
가족 가운데 어머님만 신앙을 가지고 계셔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장로님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장로님의 눈에 고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상태가 심해져서 급기야는 시력을 잃을 지경까지 눈이 나빠지게 되었다. 급한대로 이곳 저곳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고 마침내는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쌓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장로님의 어머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흐르던 고름이 멈추고 시력도 차츰 차츰 정상으로 되돌아 오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믿지 않던 가족들은 어머님이 믿는 하나님을 조금이나마 인정하게 되었고 장로님 자신도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장로님의 부인되시는 이신자 권사님 역시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이런 시절 시골이서 유년 주일학교를 다닌 것을 시작으로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뒤로 장로님과 결혼을 하면서 그 신앙은 더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어머님의 장례식 때에는 신앙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 일은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조용히 권사님을 부르더니 자신은 믿는 사람이니 믿는 사람의 방식대로 장례를 치뤄달라고 부탁했는데 다른 가족들이 이에 따르지 않고 시어머니 영정에 절을 하라고 강요를 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이 일은 끝내 권사님이 나서서 시어머님의 뜻을 받들도록 고집을 부려 해결됐지만 이로 인해 가적 관계가 소원해 지게 되었다. 그러나 뒷날 권사님이 가족과 화해하고 전도해  지금은 모두 크리스챤이 되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장로님과 권사님이 그렇게 결혼을 해서 오늘이 있기까지도 어느덧 34년이란 세월이 흘려갔다 .


뒤돌아 보면 인생의 크고 작은 산들을 넘느라 숨이 찰 때도 있었고 때로는 작은 행복에 젖어 인생의 희열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세월의 씨줄과 날줄을 얶어오는 동안 장로님 가정은 오늘날의 아름다운 신앙의 가정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른 가정들처럼 정로님의 가정에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미곡사업을 크게 하시던 장로님은 그 사업이 얼마나 잘 되었던지 일년이면 집을 서너채 씩은 장만할 수 있을 만큼 돈을 잘 벌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인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여기저기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엔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안 되려고 하니까 집안에서 조차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시어머님이 위암에 걸려 돌아 가시게 되었고 시동생은 차사고를 두번씩이나 내어 결국엔 사람이 죽는 일까지 생기기도 했단다. 이때처럼 집 안팎으로 되는일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움이 계속 되자 권사님이 나서서 액자 사업에도 손을 대 보았으나 그 역시 실패했고 그 뒤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늪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몰려드는 빚쟁이들 때문에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정말 기적이었다고 한다.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라 때로는 기도가 안 될때도 많았지만 마음만은 포기하지 않았단다. 그러기를 얼마 절망에 빠진 장로님 가정에 하나님은 서서히 일어설 기회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때 권사님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기도 중에 뜻하지 않은 환상을 보는 체험도 했다고 한다.

그 때 본 환상 때문에 지금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중보기도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어려웠던 형편이 차츰차츰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고 가계를 돕기 위해 권사님이 시작한 보험 일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주 잘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자리가 잡히자 보험일이라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걸림돌이 되는게 많은지라 그만 두시고 장로님의 사업을 위해 기도를 열심히 하셨다고 한다. 그때의 기도 응답으로 오늘날까지 사업은 나날이 잘 되고 있다.


그때의 어려움을 도장로님은 신앙에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신앙생활을 해오면 지내왔던 장로님이 였는데 시련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오늘날 장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로님은 그때 마침 한국을 방문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부흥집회에 어쩐지 마음이 동해 참석했다가 부흥회 도중 회개와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는 목사님의 말씀에 크게 도전받아 변화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장로님은 집사안수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처럼 믿는 사람에게 환난이나 시련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신앙적으로 축복의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장로님의 가정처럼.

그 후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면 살게 죄다 장로님 가정은 세 아들들까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었다. 그리고 더욱 더 축복인 것은 그 아들들 모두가 효자요 동시에 형제 간에 우애가 더 없이 좋은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점이다.

이 가족들은 대전에 사는 둘째 아들만 사정에 서울에 자주 올라오지 못 하고 주말이면 경기도 광주에 사는 막내 아들이 서울로 올라와 나머지 가족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린다. 어린 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그리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큰 아들인 도상용 집사는 교회의 음향시설을 담당하고 있고 막내아들 내외는 엑소더스 찬양팀의 반주와 키보드를 맏아 아주 귀한 일을 하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가정이다.



마지막으로 즐거운 탐방을 마치면서 이 가정이 남도교회에 가지는 바람은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장로님과 권사님은 바램보다는 앞으로는 두 분이 이 사회와 우리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큰 아들 도상용 집사와 막내아들 도상엽 집사는 남도교회가 진정한 사랑이 있는 교회 남을 돌아볼 줄 아고 말로만이 아닌 참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랬으면 큰 며느리되는 안정화 집사와 막내 이지향 집사는 우리 교회가 보다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람하였다.

탐방을 끝내면서 긴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힘도 들었지만 모두 즐거웠고 남도 교회의 미래에 소망을 가져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