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4호  --


- 가족탐방  -

구자만 장로님 댁을 다녀와서




서울에서 분당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40분이 조금 넘게 걸려서 서현동에 위치한 장로님댁에 도착했다.

높다란 빌딩처럼 보이는 파크타운 아파트 25층이 장로님댁 여섯 식구가 사는 보금자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약간의 현기증도 느꼈지만 막상 현관엘 들어서 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거실 밖으로 펼쳐진 아담한 산과 정갈하게 잘 꾸며진 집안의 분위기 때문인지 오히려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장로님 부부와 막내 본혁이가 함께 탐방에 응해 주었다.


구자만 장로님은 경남 진주시 칠암동에서 4남 3녀중, 서열로는 넷째이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님은 주조공장(고려주조)을 하셨고, 어머님은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신앙생활을 해오셨다.

고향인 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장로님은 후에 서울의 한양대 공대에서 공부한 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님이 하시는 회사를 도왔다. 주로 산딸기나 복숭아 등을 이용해 술을 만들뿐 아니라 통조림도 함께 생산해서 직접 판
매까지 관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장로님은 물론 위로 형이나 동생들도 집안 일을 도왔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는 다녔지만 어머님만 신앙생활을 하셨고 아버님은 믿음이 없으셨다. 그래서 가끔씩 교회에 나가는 정도로 지내다가 새롭게 계기를 맞이한 것이 주조공장이 망하면서이다.

오랫동안 고향에서 터를 잡고 하던 사업이 하루 아침에 망하게 되었고, 장로님의 아버님께서는 그 후로 식품회사를 차리셨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장로님의 어머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주조공장을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님의 기도가 정말 기적처럼 이루어졌고 그 후로 어머님의 전도로 아버님을 제외한 식구들이 모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완고하게 교회엘 나가지 않겠다던 아버님도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세례도 받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랜 세월 가족들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한 어머님의 기도가 비로소 결실을 맞이한 것이다.

그 자녀들이 지금은 모두 장로 또는 권사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로 어머님의 기도는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나게 한다. 주조공장이 망하기 전에 부산으로 내려가서 판로를 개척하며 판매를 도왔던 장로님은 그 때 바로 회사 근처에 살던 지금의 주집사님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술과 관련된 사업을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항상 성실하고 바르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서 이웃에 사는 지금의 장모님이 사윗감으로 능력을 인정하여 두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집사님은 결혼 전에는 가족이 모두 불교를 믿었지만 장로님과 결혼하면서 남편의 신앙을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장로님이 남도교회의 식구가 된 것은 1982년 지금으로부터 꼭 15년전의 일이다.

당시 여의도에 살다가 방배동으로 이사 오시면서 지금의 교회를 나오시게 되었는데 그때가 마침 제2원동교회 창립 첫해였다. 그때 유아세례를 받은 막내 본혁이가 지금은 고등부 학생이 되었다.

남도교회에 등록을 한 후 교사로서 봉사하셨고 집사 안수를 받은 뒤 1994년 6월에 장로임직을 받았다. 평소에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장로님은 현재 교육 부서를 담당하고 계시고 우리 남도교회의 교육발전을 위해 수고하고 계신다.

결혼 후 장로님은 안양에서 조그맣게 시작하던 목재사업을 돕기 위해 고향을 떠났고 그 후 서울로 와서 본격적으로 목재사업에 뛰어 들었다. 사업은 경기가 어려울 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현재 안양에 본사를 두고 있고, 평택, 청주, 광주에 약 200여명의 직원과 공장을 두고 있을 만큼 탄탄하게 성장했다.


그러한 성장 뒤에는 장로님이 남다른 기업운영이 있었음을 탐방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장로님이 운영하시는 회사는 일반 회사들과는 다른 독특한 기업이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한 예로 사무실 직원들에게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도록 회사에서 장려하고 실지로 기타를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기타를 사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사원들도 회사가 나서서 악기를 사주는 등 적극적으로 권하자 나중에는 너나없이 배우겠다고 나섰고 지금은 모두들 악기 한가지쯤은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매일 아침 기타 반주로 찬양예배를 드리며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구호를 크게 외치며 서로에게 웃음 띤 얼굴과 악수로 아침에 인사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여기에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서 공장 한쪽에다 테니스 구장을 만들고 전 직원들에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배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렵게만 생각하던 공장 직원들도 지금은 토요일 오후만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테니스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니 이쯤이면 노사갈등이라는 단어는 아예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구장로님댁을 탐방하면서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자녀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위로 딸 둘, 아래로 아들 둘을 두고 있는 장로님은 지금은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지만 지금껏 "공부해라"라고 하는 말을 거의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마음껏 놀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공부뿐 아니라 부모님께 순종하고교회에서도 성실하고 맑은 성품을 가진 모범적인 아이들로 잘 성장했다.

요즘처럼 아이들을 강제로 학원으로 내몰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에 뒤쳐지는 것같아 불안해 하는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는 경험적이고도 교훈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번 탐방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장로님은 책을 늘 가까이 하시며 나이에 상관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대한 신학교에서 철학강의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사업이 한 가지만 하기에도 어려운 것이 요즘의 실정인데 다시 또 박사학위까지 도전해 볼 열정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시다.

그러한 열정이 우리 남도교회의 부흥과 성장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기도하며 이번
탐방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