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제8호 (1999.7)  --



아내의 편지


박재열 집사




3월 첫 주 아침, 출근을 위해 현관을 나서는 순간 무언가 주머니에서 잡히는 것이 있었다.

     노트 위에 정서 되지 않은 채 급히 쓴 느낌이 드는 아내의 편지였다. 결혼 이후 편지라고는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만 받아 본 것이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이 편지는 나에게 무엇인가 아쉬운 것을 표현한 글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 왠지 긴장되네” 하며 약간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약간은 진짜 긴장된 마음으로 편지를 집어넣고 겸연쩍게 웃으면서 아내에게 한마디하고 집을 나섰다.

     요즘 두 아이를 돌보느라 매우 힘이 드는데 당신이 너무 무심한 것 아니냐? 당신이 조금만 더 신경 써주고 도와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사실 지난 연휴 인터넷 홈페이지 작업을 완성시키기 위해 거의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아내에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그래도 틈틈이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하느라고 했는데, 그리고 다른 남편들보다 아내와 가정에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글을 읽고 나니 휴일 동안 잠시 내 일 좀 했다고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아내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금은 씁쓸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소하랴 빨래하랴 식사 준비하랴 남들보다 몸무게가 몇 개월 앞서가는 둘째 아이 놈 안아주랴… 그런 생활을 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힘이 들만도 하다는 생각에 그날 저녁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감정을 풀어주었다. 아내도 자신이 조금 욕심부린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는 일도 줄었고 둘째 아이를 안아주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아내는 교회에서 실시하는 가정사역훈련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매일 저녁 그날 그날 좋았던 내용들을 나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열심히 교재를 갖고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두 아이 돌보는데 거의 모든 생활들 보내는 아내가 열중하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내심 기분도 좋아졌다.

     나보고 읽어 보라고 하면 몇몇 구절들을 나에게 소리 내어 익어 주기도 하곤 한다. 냉장고 문에는 부부십계명 등 몇몇 유인물 등이 붙어 있었다. 마치 나에게 보라고 걸어놓은 것처럼… 저녁 잠이 들기 전에는 내 손을 잡으며 무엇인가 잠시 침묵을 갖곤 했는데 기도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 부부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고 두 아이 데리고 다니는 것이 힘들 것 같아 그냥 집에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내가 무엇인가 열중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좋고 또 아내도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도와주었다.

     지난 4월 초, 퇴근 후 저녁상을 정리한 뒤 아내가 나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지난번 편지를 받은 뒤 꼭 한 달만의 일이었고 이번에는 무엇인가를 담은 흰 봉투와 함께 건네졌다. 그날이 나의 생일인 터라 생일축하 편지쯤이라 생각을 하고 읽어 내려갔다.

“ … 오늘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까? 생각해 봤어요. … 그런데 가정사역훈련을 받으며 ‘우리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없는가’ 라는 부분을 접할 때… “

     아내의 편지와 함께 건네진 봉투 속에는 60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 있었다. 그 동안 살림하면서 아껴 쓴 돈, 동전 저금통을 털어서 나온 돈 등 나 모르게 가지고 있던 돈인데 가정사역훈련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숨기지 말라고 그러셔서 오늘 고백하는 것이란다.

      시댁에 하는 건 생색내고 싶고 친정에 하는 건 왠지 미안할 때 그럴 때 쓰고 싶어 가지고 있던 것이라 한다. 당신이 친정에 갈 때 잘 챙겨주지만 여자들의 마음이란 그럴 때가 있는 것이란 고백과 함께…

     어쨌든 아내가 고마웠다. 여유롭지도 못한 살림에 그런 돈을 안 쓰며 모았다는 것도 대견스럽기는 하지만 나에게 그런 고백을 해 주는 것이 더 고마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돈이 아내의 비자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내는 분명 나 몰래 그 돈을 갖고 있을 수는 있어도 나 몰래 쓰지 않을 것이라는 아내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내가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도록 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 돈은 아내에게 다시 되돌려졌고 앞으로 그 돈의 유무 및 사용처에 대해서는 나에게 말하지 말도록 했다.

     교회에서 실시하는 가정사역훈련 프로그램에 아내가 참석한 이후로 아내가 나에게 더욱 새로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나 또한 그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소책자도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의 대화 시간도 늘어나게 되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바로 가정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바로 가정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것이 부부관계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며 1년 과정의 가정사역훈련이 우리 부부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 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