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목사님---


제가 고등학고 다닌 때 일입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판잣집과 다름없는 다 낡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일곱가구나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단층집에
한 칸 세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사는 사람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저희 집 맞은편 문간방에 세들어 살 고 있던 새댁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그림같이 예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운 피부에 크고 까만눈, 예쁜 입술과 오똑한 코,
이목구비중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귀여운 여자 아이였습니다.
우리 모두 그 아이의 예쁜 모습을 칭찬하고
엄마가 업고 나오면 서로 가서 볼을 만져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돌이 지나면서, 엄마와 아빠가 불안해 하기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몸집은 커지는데,'엄마', '아빠'라는 말도 못하고,
일어서는 것은 물론 혼자 앉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보니 태어날 때부터 뇌성소아마비에걸린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 아이가 서너살이 되자,
이제는 그 아이의 병적 상태를 누구에게도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부부싸움은 잦아지고 엄마는 아이를 혼자 안고 우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불쌍한 엄마를 도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의 엄마를....


오늘날 조국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신자들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우리 시대의 교회뿐 아니라 어느 시대든지 그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지 않는 사람의 꾸준한 교회 생활은
마치 몸도 가누지 못하고 지적인 성장도 없이 몸만 자라는 사람과 같습니다.

한 신자의 도덕적인 성숙은 영적인 성숙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영혼의 상태에대한 적절한 진단과 보살핌이 없이
도덕적인 사람이 되도록 휘모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사람이 아니라
도덕주의라는 이념의 머슴으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만남은
그로하여금 거룩하신 그 분의 성품을 따라 살려는
성화의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은
바로 그러한 거룩의 추구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육적인 그리스도인들로 붐비는 교회의 시대에서는
성장이나 소위'부흥'이라는 것이 별로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교회성장은 '변화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함께하시는 복음의 영향력의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부흥'그자체가 이미
일시에 많은 영혼들을 변화시키기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가리키는 것일진대,
변화되지 않는 채 교회안에서 다수속에 묻혀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수적인 증가가
부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조국교회는 성장이 아니라

핵심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목회자의 영웅주의적인 비전(visaon)보다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실한 신자가 되는 길에 대하여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가 외형적으로

아무리 많이 모이고 바쁘게 움직여도,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오 붐비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 아무리 많은 꿈을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주어도

그것을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꿈꾸는 것으로 오는 나라가 아니라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으로 오는 나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