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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거룩한 항복"

유병근 목사

 

설교본문

마태복음 26장 37~46절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설교요약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은 교통, 경치, 휴식 공간, 식사, 그리고 유적지라는 것 등 모든 면에 좋아서 자주 찾게 됩니다. 기도원이나 신학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남한상성은 부끄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636년 조선 인조 14년,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여 인조는 200여명의 부하들과 이 산성에 감금이 되어 버티다가 끝내 삼전도에 내려와서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한 일입니다.

항복이란 국어사전에 '적이나 상대에게 잘못하였다고 굴복하는 것.' 혹은 '군대나 함대가 우세한 적에 대한 전투 행위를 포기하고 그 방어하며 지키던 지점이나 병력과 병기를 적에게 내어주는 일.' 또는 '나를 굽히어 복종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항복이란 수치스럽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아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기도를 묵상을 하면서 이 모습은 성부에 대한 성자의 거룩한 항복이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본문을 배경으로 살펴봅시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시는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겪습니다.(37~38)

'고민하고 슬퍼하사.'(37),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8)라고 아픔을 토로하심니다. 이 아픔은 만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셔야 하시는 고통을 뜻합니다. 아픔을 고통은 죄로 인하여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 이 아픔을 겪으심은 만인들의 죄인들이 당하여야 할 하나님의 아픔인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은 대신 당하시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그가 당하시는 이유는 먼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었기에,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위한 것이기에 순종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안겨주시는 아픔을 달게 받을 줄 아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는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당할 아픔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예수)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사 53:10)라고, 그리고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한다.'(사 53:4)고 하였습니다. 이 아픔이 곧 죽게 된 아픔이셨습니다. 그러나 달게 받으셨습니다.

 

2. 예수님은 하남의 소원을 자신의 소원으로 받아들입니다.(39)

예수님은 고민, 슬픔, 죽게 된 아픔을 '잔'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잔'은 독배를 뜻합니다. 그 잔을 마심으로 심한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가 끝내는 사망하는 심각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인성을 보게 됩니다. 독배를 마심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만인류의 죄를 그 몸에 짊어짐은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합니다.

사형으로 최종 판정된 죄수는 여섯 번의 죽음을 경험한답니다. 잡혔을 때와 1심, 2심, 3심에서 사형!하고 선고되는 순간, 그 후 감방 생활 시에 언제 불려나가서 형장으로 갈지 모르는 불안, 마지막 형이 집행이 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벌을 받음도 이러하다면 만인들의 여러가지 죄들을 다 담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부르짖음은 절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더 실감나게 기록을 하였습니다.(히 5:7)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는 지기 싫은 십자가, 마시기 싫은 잔이지만 성부 하나님의 소원일 때 기꺼이 복종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복종입니다.

 

3.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항복이 되십니까?(40, 43, 45)

본문의 제자들은 항복이 되지 않아서 크게 실패를 합니다. 베드로도 야고보와 요한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삼상 2:9,10) 하나님에게 온전한 항복이 없는 한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산도 바울의 고백을 참고하십시오.(갈 2:20, 고후 10:4,5)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복종, 즉 거룩한 항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복을 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일찌감치 항복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