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꿔 멘 멍에"


유병근 목사


 


설교본문


마태복음 11장 28 ~ 30절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설교요약


남북 정상의 회담이 성사됨을 우리 모두는 놀라움으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무진들은 이미 남북을 왕래하면서 몰래 일을 계획하고 진행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의 총책임자를 '특사'라고 합니다. 전권을 위임받은 책임자입니다. 본문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을 성부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아 이 땅에 오신 아들이심을 강조하십니다. 아들인 자신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1. 수고와 무거운 짐(멍에)을 맨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28)

'내게 오리'는 28절의 말씀은 '권위적이면서도 친절한 초청'입니다. 초청하는 대상은 노고하는 전 인류이며 이 호소력은 메시야의 절대적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그래서 본 절은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구약에서는 '목마른 자,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하셨고, 신약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라고 하시는 이유는 인생이 메고 있는 멍에 때문입니다. 멍에는 소나 나귀에게 지우는 짐을 나르기 위한 장치입니다.

죄의 멍에, 질병, 사망의 멍에로 인하여 짓눌려서 죽음을 향하는 인생의 처참한 모습을 멍에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성경은 목자 없는 양들이요, 각색병자들이요, 어둠의 자식들이요,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이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의 지배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인간고로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 죽은 존재가 곧 인간입니다.


2.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멍에를 벗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28)

이 초청은 절대적 초청입니다. 책임 있는 초청이요 우리 주님의 성취력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말도 입에서 발설하는 데로 성취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하물며 주님의 말씀의 성취는 적중하는 것입니다. "쉼"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입니다. 성경의 교훈하는 쉼은 논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안식이요, 주안에서의 평안인 것입니다. 주님만이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죽으셨고 부활하신 이유는 영원한 안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무거운 멍에를 벗기운 소는 길고 길었던 노고를 청산하는 듯 그 속에서 내뿜는 100도나 되는 듯한 증기를 코와 입으로 내뿜고는 홀가분한 자세로 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쉼도 이 같을 것입니다.

복음송 20장을 함게 부릅시다. "내게 오라, 병든 자, 가난한 자, 죄에 빠진 자 내게 오라."


3. 예수님의 쉽고 가벼운 멍에로 바꾸어 메라고 하십니다. (29~30)

무거운 멍에를 내려놓은 소는 주인이 주는 것으로 배불리 먹고, 배를 땅에 붙이고 되새김질을 한 후 사랑하는 목동을 등에 태우고 목동이 부는 피리소리를 흥겹게 들으면서 들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우리는 이제 주님이 지워주신 새 멍에인 사명의 짐을 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쉼은 태만, 방종이 아닙니다.

참 쉼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의 안내를 받는 것입니다. 중동이나 성지에서는 밭을 갈 때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나란히 지울 때가 있습니다.

힘의 분산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나란히 걸으시면서 나의 짐을 대신 지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고 있는 거룩한 삶을 위한 투쟁, 사명을 위하여 메고 가는 십자가, 주를 따라감에 감수하여야 할 선한 싸움들을 사양하지 말고 잘 감당합시다.

이러한 삶에 참 해방이 있음을 전하면서 8월의 해방의 달을 보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