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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민족의 위한 근심"


유병근 목사


 


설교본문


로마서 9장 1~5절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설교요약


요즘 거리에 붙어있는 현수막에 "6.25를 잊으면 전쟁이 다시 온다."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의 파멸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격언 중에 "부정한 평화일지라도 옳은 전쟁보다 낫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쟁은 억제하여야 하고 전쟁은 없어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형제, 골육, 친척, 즉 이스라엘 민족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1. 성도는 내 민족을 위하여 근심하는 애국자여야 합니다.

바울은 여러 서신에서 감사하라, 기뻐하라. 라고 자주 권면을 한 사도입니다. 자신도 늘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일에는 늘 근심과 무거운 고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민족"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민족을 위하여 늘 근심하고 아파하는 자세를 취하여야 합니다. 민족이 복 받기를, 나라가 형통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나라가 있어야 가정도 교회도 존속합니다.



2. 성도는 내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애국자여야 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바울의 모범적인 애국심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지더라도 민족이 구원을 얻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애국심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성도의 애국심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어놓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생명을 건 애국자여야 합니다.

모세도 이러하였습니다. (출 32장)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려 할 때 모세는 그렇다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도 그러하였습니다. 다 죽게 되어 있는 유대인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성도는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여야 할 애국자들입니다.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6.25의 3년 1개월간의 전쟁에서 우리 국군이 18만 5천여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유엔군이 와서 이 나라를 위하여 3만 8천명이 죽었습니다. 학도의용군이 2천여명이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야 나라를 위한 희생은 당연한 것입니다. 평화로울 때에 희생의 애국심이 없으면 이 나라는 설 수 없습니다.



3. 성도는 내 민족의 영적 구원을 위하여 수고하는 애국자여야 합니다.

바울의 애국심은 민족의 구원문제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성전, 약속, 성경, 메시야가 온 나라인데, 즉 좋은 출발, 기득권이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메시야인 예수를 믿지 않음을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눅 19:41~44에는 예수님의 애국심이 있습니다. 수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셨습니다. 영육간의 멸망을 내다보시고 통곡을 하셨습니다. 이름을 부르시며 우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부강하여야 합니다. 정치, 군사, 경제에 복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통일도 이루어야 합니다.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어 멸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온 민족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을 가야 합니다. 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권을 얻은 바탕이라야 평화가 정착을 합니다. 참 평화는 정치, 경제, 지도자, 과학, 교육으로 오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십니다.

모든 민족이 예수를 구주로 믿어 참 평화를 얻도록 전도하며 기도하는 애국자가 됩시다. 평화는 영혼의 강건, 육신의 안정이라는 균형에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