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성경 본문

요한목음  3장 16~21절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설교 요약

성탄절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사람의 몸으로 오신 날을 기리는 날입니다. 요한은 마태나 누가와 다르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오심을 1:1과 1:14와 3:16이하에서 탄생에 대한 구체적 기록보다도 교리적인 그리고 예언적인 차원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으며 그 분이 곧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리오수는 '성자가 존재하시지 않는 때는 없었다'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셨던 성지의 주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1:1, 1:14)

왜 예수님을 요한은 말씀(로고스)으로 표현을 하였을까요? 칼빈은 '그가 성부의 영원한 뜻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ㄸ스은 우리를 그 아들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당시 헬리 철학자들은 철학의 최종적인 결론을 로고스, 즉 참, 담, 진리라고 보고 그것을 안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철학자들의 궁극적인 답인 로고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힙니다.거룩하신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심은 하나님의 지극히 낮아지심입니다. 이것은 마치 트렌쥐가 말한대로 구약 성막 안에 하나님의 영광인 광채가 머무는 것과 같은 것이며 바울이 표현한대로 지륵릇인 우리 안에 보화이신 주님이 계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모습인 사람으로 오셨습니다.(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는 루터가 말한 대로 '작은 복음'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을 하셨으면 이 보잘것없는 물질로 된 이 육신을 입고 오셨겠습니까? 우리는 높은 자리, 귀한자리는 선호하지만 낮은 자리 천한 자리는 피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현재의 신분에서 역 대합실의 노숙자들의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노숙자들 속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든지 함께 노숙이 가능할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힘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실 수 있음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외아들, 즉 독생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3:16)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입니다. 본문의 독생자란 구약의 맏아들과 대응되는 표현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중 예수님은 맏아들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내심을 받으심은 사랑의 표현이요 우리를 구원하심에 최고의 방법이셨스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임하는 진노를 누가 대신 박겠습니까? 천사도 사람을 대신할 수 없고 어느 성현도 그 자신이 죄인입니다. 저는 외동으로 자랐습니다. 외동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경험을 하였습니다.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4. 하나님이 예수를 사람의 몸을 입혀서 영생의 주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심의 깊으신 의미를 아십니까? '멸망'이란 모든 것의 끝입니다. 죽음이 오고 그 다음은 영원을 지옥에서나 천국에서나 보내어야 합니다. 지옥으로 가는 멸명의 신고는 19절에 밝힌 대로 예수를 빛으로 영접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 지옥은 영원한 불못입니다. 고통 속에서 보내며 하나님과는 단절입니다. 그 뜨거움속에서 물 한 방울도 주어지지를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수양이나 현세의 더 좋은 행복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을 모면하여야 합니다. 구원을 얻어 영생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이 엄청난 일을 위하여 주님은 오셔거 죽으시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