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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몸과 언약의 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6장 26~30절

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설교 요약

성찬예식은 우리 주님의 살과 피를 떡과 잔으로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곧 맞이하는 성탄절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을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성찬식은 오셔서 살 찢어 피 흘리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놀라운 일들을 기념하는 일입니다. 숙연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 참여합시다.


1. 본문배경

예수님은 12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마련하셨습니다.(29) 장소는 마가요한의 다락방입니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은 충격적인 발언을 하셨습니다.(21) '너희 열 둘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는 무질서와 극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인신매매가 성행을 하였습니다. 빚을 갚지 않는다는 구실로 사람을 데려다가 종으로나 첩으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인신매매는 큰 죄악입니다.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그 방언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가룟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은 20에 제사장들에게 넘겨주려고 모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4~16) 유다는 주님이 모르실 줄 알고 음흉하게 그 자리에 있었으나 주님은 유다의 마음과 행동, 생각까지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주님을 배신함은 큰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는 차라리 나지 않음이 더 낫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행여 조심하여야 하겠습니다. 12제자 중에서 이런 배신자가 있다면 우리도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대로 가시거니와(슥 11:12)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형벌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성찬식의 제정

주님은 제자들과 잡수시는 중에 떡을 손에 쥐시고는 찢어 떼셔서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다시 잔을 가지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1) 오늘 나누는 떡이 주님의 몸을 기념합니다.
주님은 이미 그 몸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더 큰 사랑으로 그 몸을 찢으셔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양손과 발을 못으로 박아 높이 매달았으니 찢어집니다. 온 몸이 찢어졌습니다. 가시관을 씌웠으니 찢어집니다. 채찍으로 때리시니 찢어집니다. 온 몸이 찢어졌습니다. 이 고통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결국 내가 주님을 찢은 것입니다.

2) 오늘 나누는 잔은 흘리신 피, 언약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몸이 찢기니 피가 흐릅니다. 이 피는 우리의 죄를 대신한 생명의 피입니다. 성경은 피에 생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죄를 속하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는 하나님과 구약 성도들 간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짐승을 드림은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피 흘리심으로 완전한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새 언약입니다. 유월절이 제정된 당시에 천사가 문설주에 피가 있는 집은 넘어갔으나 피가 없는 집은 죽음을 갖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인하여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3. 성찬식을 마친 후의 모습(30)

주님은 제자들과 참니하여 감람산으로 향하셨습니다. 살이 찢길 것과 생명을 버릴만큼 피를 흘리실 것인데 찬송을 할 기분, 부누이기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항상 불러야 합니다. 이 때는 주로 시편을 유월절 식사 전이나 식사 중, 그리고 식사 후에 불렀습니다. 고난의 죽음을 앞두고 찬송을 하며 감람산으로 향하심은 기도하시기 위함이며 찬송을 하심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자원하시는 것이요 기쁜으로 감당을 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우리는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