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의 주제 : 봉사의 달(엡 4:12))
                  
                   "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 오늘의 찬양가사


       ~ 생명의 양식 ~

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맘이 빈 자에게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님이 해변서 떡을 떼심 같이
하늘의 양식을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 오늘의 성경말씀(빌 3:7~16)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빌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설교요약


                             ❝ 예수 안에서 사나 죽으나 ❞


일반적으로 죽은 줄로 알았던 사람이 살아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 기뻐합니다. 대개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크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안에서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죽음의 더 나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예수 안에서는 죽음도 복이요 사는 것도 복입니다.(10)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의 죽음도 본받기를 원하며, 예수의 부활도 경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삶과 죽음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하였고 차라리 원하는 바는 죽어서 부활을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한 죽어도 복이요, 사는 것도 복입니다. 깊이 헤아려 보면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복일 수 있습니다. 죽음은 자는 것입니다. 잠시 자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천국에서 눈을 뜹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예수 안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달음질의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11~12)

바울은 성도의 삶을 자주 경기에 비유하였습니다. 바울은“예수에게 잡힌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 안에서 살았으나 그는 죽음을 두려워 않고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에게 잡힌 삶이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를 벗어난 삶은 죽은 것입니다. 예수에게 잡힌 것은 삶과 죽음의 방향이 정하여진 것입니다. 이것이 곧 행복한 삶입니다.

3.하나님은 우리의 삶도 죽음도 당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게 합니다.

미 상원의원 의회의 원목이었던 비숍 감독의 예화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어느 산에 잘 자란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거목이었습니다. 이 나무들은 꿈이 컸습니다. 대들보도 되고 싶고, 큰 기둥도 되고 싶고, 큰 바다를 항해하는 유람선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사람들이 와서 나무들을 베어다가 하나는 사형집행을 위한 십자가를 만들고, 또 다른 나무는 말과 소의 구유를 만들고, 또 다른 나무는 갈릴리 바다에 작은 고기잡이배를 만들었습니다. 이 나무들은 자신들의 큰 꿈이 깨어진 비참함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나무로 만들어진 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눕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이 나무는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하셨음을 알았습니다. 또 고기잡이배가 된 그 배에 하루는 예수님이 타셔서 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나무는 그 때에야 하나님이 자신을 다듬으셔서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쓰심을 알고 감사하였습니다. 십자가가 된 나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날 청년 예수께서 만인들의 죄를 지시고 자기의 십자가 형틀에 매달리심을 보고는 이 나무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는 것도 모르고 죽는 것도 모릅니다. 옳게 사는 것 옮게 죽는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안에서 살다가 죽는 것 가장 복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시민권을 자랑하며 주 위하여 사는 것 그리고 주 위하여 죽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  유병근목사 설교말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