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주제 : 영적훈련의 달(딤후 4:8)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 오늘의 찬양가사


~ 하늘이여 노래하라 ~

하늘아 기쁘게 노래하라
땅이여 노래할지어다
산아 산아 산아 즐거이 노래하라
산아 즐거이 노래하여라

만물아 즐거이 노래하라
땅이여 천군 천사 함께
찬양 찬양 찬양하여라 만군의 주
대왕 여호와 높이 찬양해

주님께서 백성들 위로해 주셨으니
고난당한 자 그 고난당한 자
긍휼히 여겨 주님의 자비
긍휼히 여겨 자비 베푸시리
여호와께서 시온 위로해 주시리라

하늘아 기쁘게 노래하라
땅이여 노래할지어다
산아 산아 산아 즐거이 노래하라
산아 즐거이 노래하여라

만물이 즐거이 노래하라
땅이여 천군 천사함께
찬양 찬양 찬양하여라 만군의 주
기뻐 찬양해 기뻐 찬양해
아멘
              

♧ 오늘의 성경말씀(엡 4:11~16)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설교요약


                                                   ❝  훈련과 성숙  ❞

7월은 훈련의 달입니다. 훈련소를 거치지 않는 군인은 전쟁을 제대로 치룰 수 없으며, 연습을 하지 않고는 운동경기에서 이길 수 없듯이 우리도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유능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엉성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엉성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부실하게 하면 교회가 부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1.여러분은 성숙하고 있습니까?

부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 있다면 아이가 태어나서 제대로 자라지 않을 때 일것입니다. 출생 이후 늘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애물단지일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하였으면 자라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햇수는 늘어가는데 성장이 없다면 정상적인 믿음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성숙이 없이는 진정한 예배, 헌신, 기도, 봉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어른의 흉내를 내어도 속일 수 없습니다. 잘 믿는 척 하여도 올바른 신앙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시고, 오늘 본문에도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라”고 하십니다. 성숙하고 있습니까?

2.올바르게 성숙하여야 합니다.

1) 거듭나기만 하면 저절로 성숙한다는 점 - 대다수의 성도들이나 가르침에서 일단 거듭나 버리면 ‘성숙은 시간문제이다’라고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생명은 시간의 흐름에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속적으로 교회에 오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하는 사이에 자랍니다. 그러나 성숙을 위하여 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성장을 위하여 힘을 쓰고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는 선수는 부진할 수밖에 없듯이 자신의 성숙을 위하여 수고하여야 올바르게 성숙할 수 있습니다. 의지적 자세가 중요합니다. 먼저 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경우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 성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는 견해 - 영성, 영적성장이란 용어를 흔히들 신비한 것으로 간주하여 신비주의, 혹은 내면의 남다른 경험으로만 생각하여 수도사나 신학교에 갈 사람들에게나 해당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이 운동선수나 군인에게는 실제적 문제이듯이 성숙은 성도에게 실제적 문제입니다. 오히려 육체의 건강을 위한 훈련보다 더 영적성숙을 위한 훈련은 실제적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영적훈련은 금생과 내세에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딤전 4:7~8)

3) 영적 성숙을 순간적인 변화, 지름길의 방법으로 된다는 오해 - 성경에는 이러한 경우처럼 보이는 기사나 사건들이 있어 보입니다. 요나, 다윗의 회개, 바울의 회심 등, 그리고 우리나라의 김익두 목사의 회심, 그러나 성경이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들의 거듭남이나 회심은 갑자기 일는지 모르나 성숙은 갑자기 돌발적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현대사회는 최소한의 시간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득이 앉아서 공부하여 실력을 쌓는 것보다 족집게 과외라도 하여 단시일에 많은 실력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와같은 원리를 영적 성숙에도 도입하려 합니다. 한번의 안수, 한번 참석의 집회, 이 테잎을 한번 들으면 하룻밤, 철야로, 이번의 부흥집회로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신앙성숙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마치 곡식과 같아서 심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하듯이 시간과 훈련에서 자라갑니다. 혹시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 집사가 되는 길은 속성과정이 있을 수 있으나 영적성숙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긴 시간의 여행입니다. 일평생의 달음질입니다.

4) 영적 성숙을 지식으로 측정하는 경우 - 성경을 많이 알거나 암송을 하거나 쓰거나 해박한 신학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숙의 기초는 되겠지만 그것이 성숙은 아닙니다. 성경을 아는 것만큼 행함도 뒤따라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지식이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가치가 없습니다. 개인의 성숙을 측정하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열매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성숙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배, 기도, 성경, 선행, 봉사, 전도, 주간 교회 프로그램, 교회안의 소그룹 모임 등으로 훈련을 받으며 또 하나님이 전개하시는 환경, 시험 등의 훈련을 잘 받으셔서 유능한 성도가 됩시다.

                                         -  유병근목사 설교말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