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찬양

~ 땅 위에 사는 성도들 ~

땅 위에 사는 성도들
만유의 주를 찬양해
즐거운 찬송 불러서
다 나와 찬양하여라
알렐루야

주 하나님이 되시니
우리를 창조하셨다
주 우리 목자 되시사
늘 인도하여 주시네
알렐루야

주 찬양하며 문으로
들어갈지어다
주님께 찬양하여라
주는 영원하시도록
선하시나이다

주님은 자비하시고
그 진리 불변하시니
영원 영원 하시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오늘의 성경말씀(이사야 53:1∼9)

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 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 설교요약


                                          “날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


사람마다 한번은 죽습니다. 어떤이의 죽음은 좋은 영향력을 남기는가하면 어떤 이의 죽음은 좋지 않은 것들을 남기기도 합니다. 사람의 훌륭함은 죽을 때도 좋은 것들을 주고 갑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죽음은 어떠하였습니까? 오늘 읽은 본문은 주전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야이신 예수의 오심과 고난, 그리고 죽으심에 관하여 예언을 해놓은 것입니다. 본문을 소개하겠습니다.

1.메시야의 고난 당하시는 모습(1~3)
본문 2절과 3절을 보면, 그는 연한 순, 마른 땅의 줄기,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사람들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고,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었고, 간고를 겪고, 질고를 아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700년 후에 오신 주님은 정말 이러하였습니다. 그 출신이 훌륭하시지 못하였습니다. 겉모습도 볼품이 없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나사렛 예수’라고 하여 시골 출신으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도 아름답지를 않았습니다. 더러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미화시켰습니다. 영화에도 잘 생긴 배우를 분장을 시켜서 등장시킵니다마는 미화한 것입니다. 그 당시 갈릴리 지역의 환경과 두개골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구조와 피부가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출신도, 신분도, 직업도 화려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도 십자가에서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정말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언대로였습니다.

2.예수님이 왜 이런 모습으로 오셨고, 죽으셨을까요? (4~6)
본문 4절을 보면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심이라고 하십니다. 5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맞음, 찔리심, 고난으로 인하여 내가 나음을 얻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라하심, 볼만한 모양이 없으심은 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였기에 예수님이 이렇게 되셨을까요? 6절을 보십시오.‘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각 제 길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린 존재였습니다. 죽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배신한, 믿지 아니하는 죄입니다. 이 죄는 형벌과 진노를 초래합니다. 죽음과 지옥이 기다릴 뿐입니다. 이 무서운 결과로 인하여 예수님이 오셨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내 탓입니다. 우리 주님의 고난의 생애, 그리고 고난의 죽으심이 나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받지를 않습니다. 믿지를 않습니다. 교회절기 중에서 인기 없는 절기가 혹시 고난주간이 아닌가요?

3.고난을 받으시는 주님의 태도를 봅시다. (7)
제자들과 함께 성찬을 행하시고 찬송하시며 감람산으로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새벽에 로마병정들에게 잡혀 가시면서도 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심문을 당하시면서도 변명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나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내가 당하여야 할 고난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작은 십자가에도, 작은 고난에도 견디지를 못합니다. 불평을 합니다. 원망을 합니다.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 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신 주님을 생각하는, 본받는 기회가 됩시다.

                                                                                - 유병근목사님 설교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