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금식을 하리까? 어떻게 기도와 자선을 해야 하나이까? 음식을 어떻게 가려 먹어야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 모든 것이 하늘 앞에서는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니라. 결국 드러나지 않을 비밀도 없고, 나타나지 않을 숨김도 없느니라”(도마복음 6).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면서 유대적인 금식, 기도 그리고 자선을 행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적인 종교적 습관이 아니라 하나(One)인 생명의 영적 체험이다. “자신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인 내면의 빛”(神性, One)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ego적인 뭔가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ego)가 본래 없는 것”(無我)이므로 이원성인 겉 사람”(ego)의 좁은 견해로 의심을 내어 형식과 틀에 매달인 행동을 하지 않아야 영원한 비이원성인 천국(One)이 드러난다.


   이원론적인 ego를 부추기는 금식, 기도 그리고 자선은 율법과 종교의식에 매이게 되어, 포로가 된 자는 하나(One)의 생명인 자신을 찾을 시간이 없게 된다. 자선은 우주와 타인과 동떨어진 라는 것은 따로 없다”(自他一切)는 태도로 오른손(속사람)이 하는 것을 왼손(겉 사람)이 모르게 하여야 한다”(6:3). 불완전한 지혜가 아니라 평화와 침묵을 통해서 神性(One)을 깨달으려는 완전한 지혜가 있어야 하며, “솔로몬의 지혜에서는 모든 것이 평화와 침묵 속에 싸였을 때 당신의 전능한 말이 천상의 왕좌에서...내려왔다고 하였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행동에 의하여 나타나고, 어둠(ego)에 의하여 숨겨져 있던 모든 것”(One)은 마침내 빛(true Self)에 의하여 드러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때 온 우주가 으로 충만한 것을 체험하는 환희를 누릴 수 있다(5:8). 신비주의자인 루미(Rūmī)사람은 이별의 슬픔을 아프게 노래하고 있다네. 피리로 살게 한 장인의 솜씨는 까맣게 모르고서라고 하여 하나(One)의 진리즉 고통이 즐거움이요 슬픔이 기쁨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신비주의 차원”(One)에서야 비로소 동양은 서양을 만나고 서양은 동양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