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여자가 낳지 아니한 자를 보거든 엎드려 경배하라,

                             그가 바로 너희 아버지임이라”(도마복음 15).

 

    “여자가 낳지 아니한 자는 우주가 생기기도 전에 존재한 만물의 근원인 神性”(true Self)이며, 불교적으로는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나기 이전의 나”(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이다. 이러한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神性(佛性, One)을 자각한 자(true Self)를 발견한다면 쉽다(), 어렵다() 등의 여우같은 ego적인 의심을 버리고 엎드려 경배하여야 한다.


   神에게 경배하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과 하나(One)”가 되려는 노력이지만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3:11). 구원이란 veil(구름)에 가려진 사망의 목숨”(ego)을 제거하고, 하나(One)생명의 목숨”(神性)을 찾는 것이며(8:35), 예수는 둘이 아닌 진리(One)를 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18:37). 즉 우리의 태어나지 않은 참모습()이 하나님의 권속(One)이라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오셨다(2:19).


   바울은 그리스도가 그를 통해서 역사하기에”(15:18) “여자가 낳지 아니한 자”(神性) 불임(不姙)인 여자의 아들(true Self)의 내재적 활동을 자각하고 있음을 고백하였다(1:29). 불교의 佛性(神性)은 인생과 우주의 근본도리(One)로써 상보(相補)하는 유기체적 관계 속에 있으며, 이러한 연기적 실재관은 양자역학(量子力學)의 주장”*과 동일하다.

 


*   양자역학(量子力學)은 전자와 같은 소립자의 입자들이 파동처럼 움직이고, 각각 상대를 상보하는 연기적(緣起的)임을 증명하고 있으며, 관찰결과는 관찰행위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원인과 조건에 의한 연기(緣起)의 일시적인 현상을 (dharma)이라고 하며, 우주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One)의 유기체”()이다. 사물은 상호의존성을 통해 그 존재와 속성을 얻으므로 그 자체로는 나 다름이 없으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리()는 오직 일원론적 하나”(One)이다. 우리는 본체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지만, 현상적에서만 차이가 날 뿐이며, “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One)으로부터 나온 완전한 인간(神性)”(11 :3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