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너희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내어 놓으면, 너희가 내어 놓은 것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만일 너희가 너희 자신 안에 그것을 내어 놓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너희 것이 아닌 것이 너희를 죽이리라”(도마복음 70).

 

   “오직 예수”*만을 구원자로서 믿는 것(他力信仰)이 아니라, 스스로 ego의 소멸로 씨앗(神性)이 열매를 맺느냐 즉 자각하느냐에 따라 구원이 달려있다. 그러므로 이미 있는 내면의 神性에서 빗나가면 죄인이 되며, 전연 내면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면 그대가 하는 모든 것은 그대를 파괴할 것이다. 본래의 상태인 ()의 속사람”(true Self)을 회복하는 세미한 소리(왕상 19:12)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 비운 침묵이 요구된다.

   구원은 영원한 내면의 속사람”(true Self)을 회복하여 무한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즉 고통과 불행을 일으키는 그림자인 egoveil을 벗겨, “우리 안에 본래부터 감추어져 있는 보화”(13:44)인 영원한 神性(true Self)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ego를 제거하고, 되찾게 된 光明”(, One)**은  바탕이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는 하나의 생명”(One)이며, 이것을 발아시켜 열매 맺도록 하면 영적인 풍성함을 누린다.

   우리는 내면의 변화인 회개(回心)를 통하여 허상(虛相)의 세계(ego)를 벗어나서, 본래성인 실상(實相)의 세계(One)”를 회복함으로 진리와 하나”(One)가 될 수가 있다. 허상(虛相)의 세계(ego)에서의 어둠()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실상의 생명”(One)인 광명에 의하여 저절로 사라진다. 이렇게 하나(One)의 생명으로 구원된 자”(true Self) 빈부(貧富), 고락(苦樂) 등의 변화에 마음이 동요됨이 없이 無爲로 조화와 평화로운 삶(One)을 즐긴다.



종교 다원주의의 걸림돌은 오직 예수이다. “만물이 Logos(예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기”(1:3) 때문에 모든 것에 時空을 초월한 보편적인 예수(神性)가 현존하고 있다(1:20, 3:11). 이러한 신적인 예수(One)는 오직이라는 표현으로 한정지을 수가 없다. 기독교는 서구 문명권의 한계에 의하여 제약되어 있고, 불교도 힌두 문명권과 중국 문명권에 의하여 제약되어 있다(장님 코끼리 만지기).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라 상대주의적 상황 하에서 자신의 종교를 절대적이고 유일한 종교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모든 종교는 상대화되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다종교적 문화 상황에서 종교 다원주의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현대물리학적으로 우주란 전자기장(電子氣場) 곧 무한한 에너지를 갖춘 빛이 가득 차 있으며, 이것은 텅 비어 있는 하나(One)의 장()이지만, "광명의 (, One)"으로 충만하다(12: 32). 종교는 본래의 자기(神, true Self)에 눈을 뜸으로써 이원성(ego)의 고통을 근절시키는 것이므로 하나(One)이며, 구원의 원리도 하나(One)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어린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 1:19)의 구절을 예수의 피로 구원되었다고 문자적적으로 해석하였다. 이 구절에서 어린양은 ego, (하이마)는 육체의 빨간 피가 아니라, 생명(神性)을 의미하므로 "ego를 소멸하여 내면의 생명(true Self)으로 구원(One)되었다고 재해석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