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4:6)고 하였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不二로서, 모든 것 속에 깃든 전부(All)이며, 어떠한 이름도 부를 수 없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I am that I am. 3:14). 時空을 초월한 진리(true Self)로써 현존(Immanul)하며, 조금도 나누어 질 수가 없는”(不可分) 영원한 생명이다. 아퀴나스는 생명이신 하나님(One)이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12: 32)고 하였으며, 우주가 ()의 한 덩어리이므로 내가 곧 ()”의 상태라 할 수 있다.


   베단타철학에서는 만이 유일한 실재이고 모든 피조물인 각각의 존재는 환영이라고 하며, 으로부터 나온 피조물의 허무함을 깨닫고 나면, 전체성인 (One)만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唯一眞如). 이러한 본래의 세계(참된 삶, One)에는 생로병사가 없지만, ego에 의한 가공의 세계(가짜의 삶)에는 생로병사가 있다. 따라서 모든 종교가 만나는 한 지점은 이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하나(One)의 우주적인 큰마음의 실현이다.


“  光明의 하나님(神性)”은 우리(主觀)가 기도하는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이 아니며, 무한한 하나님의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하나(One)가 되어 있는 전체성이다(無對光神, 1:20). 진리(One)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이 대상적인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50:21). 왜냐하면 하나님은 객관적 타자(他者)인 창조주가 아니라 창조성이며, “순수 생명에너지의 장()”*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리는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는 大道의 보편적 진리”(One)인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창조주로써 피조물인 인간과 구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화이트헤드(Whitehead)의 과정신학(過程神學)**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창조성으로 분리되어 질 수 없는 진리”(不可分)이며, 時空을 초월하기 때문이다(無始無終). 실재로써 하나(One)인 불교의 (Emptiness)도 물리적 시간세계의 대립을 완전성(One)속에 포섭하여 해소한다.



구약에서 야훼, 엘로힘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의미는 현상적 존재보다는 힘인 순수 생명에너지의 장()”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우주는 의 존재 그 자체이며, 시간 속에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창조되고 있다(베단타). 완전원만(完全圓滿)한 실상神性(true Self)의 한 덩어리이다. 그러므로 老子일상의 눈앞에 있는 사물 어디에도 가 아님이 없다”(道德經 1)고 하였다. 현대물리학은 물질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무한한 장() 에너지이다고 하며, 우리의 마음이 동력(動力)으로 되어 소립자(素粒子)가 이루어지고, 우리의 공업력(共業力)으로 우주가 구성된다고 한다.


**  과정신학(過程神學)은 인간과 세계의 진화론적 성격을 강조하며 현대에 맞는 일원론적 신학”(One)을 형성하여 성서의 문자 우상숭배주의에 빠진 이원론의 근본주의(성서 문자주의) 신학을 극복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상 움직이고 있는 과정으로 보는 불교와 현대 과학의 발전은 이러한 우주적인 신학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에너지 일원론의 진리를 주장하는 동양신학(신학, 신학)도 헬라의 이원론에 근거한 영혼과 육체, 창조주와 인간(자연)을 구분하는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유일신의 계시에 근거한 보수신학이 의 초월성과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현대신학은 보편적인 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