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장구치고 북쳐도 맑은 물에 귀 헹굴 뿐 마음의 고삐를 당겨, 오직 한마음 저 공활空豁한 하늘만 바라보는 一心의 마음은 일체의 상(相)을 여윈 공(色卽是空), 그러면서도 동시에 일체의 상을 수용하는 공(空卽是色)의 지혜가 아닙니까? 장로님의 삶은 詩와 같이 일체의 相을 떠났기에 무한한 자유가 있고, 일체의 相을 받아들이기에 한없는 자비가 있군요. 이와 같은 "심령이 가난함으로 누리는 천국의 축복"(마 5:3)을 지금 여기서 만킥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세상이 장구치고 북쳐도 맑은 물에 귀 헹굴 뿐 마음의 고삐를 당겨, 오직 한마음 저 공활空豁한 하늘만 바라보는 一心의 마음은 일체의 상(相)을 여윈 공(色卽是空), 그러면서도 동시에 일체의 상을 수용하는 공(空卽是色)의 지혜가 아닙니까?
장로님의 삶은 詩와 같이 일체의 相을 떠났기에 무한한 자유가 있고, 일체의 相을 받아들이기에 한없는 자비가 있군요. 이와 같은 "심령이 가난함으로 누리는 천국의 축복"(마 5:3)을 지금 여기서 만킥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