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주위에는 "진리의 숨통을 조르며, 죄와 사망의 구름다리를 건너는 슬픈 족속들이" 얼마나 많은지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되는 이유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의 성경구절에서 예수님의 "내"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역사적인 육신의 "내"로 강조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즉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born, I AM.)"(요 8:58)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에서와 같은 신앙적이며, 보편적인 예수님의 "내"를 간과하는 초월성에 대한 無知때문이지요.
요한복음 8:58절,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은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질이 같다는"(不異不一) 의미로써 조금도 ego가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時空을 넘어선 구세주로서 나사렛 예수로 몸을 입기 전에 존재했고, 나사렛 예수의 몸을 벗은 후에도 존재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시간 속에서 "있었다"인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I AM"은 영원 자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빛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으며"(I AM) 「있었다」와 「있을 것이다」의 생성에 결코 종속되지 않고, 영원은 절대적인 현재이며 절대적인 현재는 회개(metanoia)하여 "거듭난"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들의 주위에는 "진리의 숨통을 조르며, 죄와 사망의 구름다리를 건너는 슬픈 족속들이" 얼마나 많은지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되는 이유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의 성경구절에서 예수님의 "내"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역사적인 육신의 "내"로 강조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즉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born, I AM.)"(요 8:58)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에서와 같은 신앙적이며, 보편적인 예수님의 "내"를 간과하는 초월성에 대한 無知때문이지요.
요한복음 8:58절,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은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질이 같다는"(不異不一) 의미로써 조금도 ego가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時空을 넘어선 구세주로서 나사렛 예수로 몸을 입기 전에 존재했고, 나사렛 예수의 몸을 벗은 후에도 존재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시간 속에서 "있었다"인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I AM"은 영원 자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빛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으며"(I AM) 「있었다」와 「있을 것이다」의 생성에 결코 종속되지 않고, 영원은 절대적인 현재이며 절대적인 현재는 회개(metanoia)하여 "거듭난"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