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땅
글, 김 의 준 장로
신들의 땅에는
신이 굴러다닌다
돌멩이처럼, 나무토막처럼.
황금 보좌에만 앉아 계시던
존귀하신 분이, 보다 못해
삼라만상의 부스러기가 된 것일까
방석만한 배설물을
속 시원히 쏟으며, 백주 대로를 활보하는
소의 보라빛 항문에도
어슬렁거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개의 축 처진 인중에도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의 녹슨 깡통에도
신이 있다.
신에 대한 저들의 갈망이 지극하여
땀과 가난에 찌든 삶의 부스러기가
신이 된 것일까
어차피, 신은 삼라만상에 깃든
어떤 미소가 아니던가.
(고진아 목사의 우파니샤드 기행을 읽고)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하나님의 개념을 재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좋은 詩라 여겨집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영(靈)이신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는 無所不在하시는 하나님(엡 4:6)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이원론적으로 대상화하여 기복적으로 개념화한 것은 매우 잘못된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길과 다른"(사 55:8) 신앙적, 보편적, 우주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인간과 같은 인격을 가진 하나님 즉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적으로 이해하여, 3차원내에서 장소나 시간에 한정되는 하나님으로 개념화하는 한 기독교는 주님의 사랑과 거리가 먼 근본주의적인 독선과 배타성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아닐 까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의 개념이 우리 인간의 사유와 언어를 초월하는 신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모든 개념은 이 신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초(超), 내재적인 신관(神觀)은 기독교의 신학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이 세상에서 발생되어지는 여러가지의 악과 고통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