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Norway) 국민들이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테러의 충격속에도 수도(首都) 오슬로(Oslo) 시청 광장에 20여만명이나 모여 테러 희생자를 애도하는 추모제로서, 증오대신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나타내는 "장미행진"을 행한 것은 매우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의 비극적인 사건은 중세 십자군의 후예를 자처하는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 Christian) 즉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서구적 이분법적인 전통적 교리(Either-or)를 고수하며 다른 종교는 물론 개혁적인 변화에 반대를 주장하는 자의 하나님의 개념에 대한 無知의 결과로 발생되어진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 까?
우리 기독교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無所不在), 또한 온 누리에 편재(遍在)하고 계시기에"(all in all, 엡 4:6, 롬 1:20) 섭리에 의한 이 세계의 다양성을 당연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만 옳다는 독선적인 사고보다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와 같이 동양적 전체성인 "비(非)이분법적 사고"((Both-and)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되지 않을 까?
이번 노르웨이에서 무차별 대량 살상을 자행한 브레이비크 사건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선을 넘어, 비참하게 만드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알고보니 성장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인
나라에서 자라면서, 기독교 신앙의 인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이분법적,
배타적인 잘 못된 의식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간데 없고, 나는 선이고, 나와
다른 것은 다 악으로서, 지옥의 자식들이라는 교리적 딜레마에 빠져,
타를 부정하는, 결국 온전하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결과임을 이번 사건
을 통해서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둠을 배제한 빛의 존재를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상대적이며,
서로 조화를 이룰 때, 21세기의 십자군전쟁 같은 비극은 사라지고,
세상에 하늘나라가 도래하지 않겠는가.
서로 조화를 모색하는데 촛점이 맞춰져야 세상은 궁극적인 하늘나
라가 도래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