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빌립의 질문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14:10)고 대답하셨다.


 

  예수는 스스로가 時空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true Self, 8:58)임을 설명하지만, 빌립은 "상대 이원론적 사유”(ego)에 사로잡혀 예수의 활동 속에 나타나 있는 절대적 (One)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개체적인 나”(ego)가 소멸되고 보편적인 둘이 아닌 하나(One) ”(true Self)는 모든 것 안에서 의 영광을 밝히는 하늘”(19:1)을 체험하며, 불교도 세상 모든 것이 부처(One) 아닌 것이 없다”(頭頭物物無非佛) 말한다. 또한 운문선사(雲門禪師)부처는 무엇입니까?”라는 어떤 스님의 질문에 똥 막대기가 부처(One)이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 안에서, 또한 한 줌의 모래 속에서도 부처(One)를 보았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우주 만물은 오직 하나(One)의 진리인 (그리스도)만이 존재”*하며, 다른 것들은 있을 수 없으므로 있는 그대로”(神性)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무소부재한 전체이신 (One)을 보는 것으로 하나가 그대로 전부이며, 전부가 그대로 하나이다”(一卽多 多卽一). 그리스도는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생명(One)이므로 구원은 대상인 역사적인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거짓 목숨(ego)을 벗어나 예수와 하나(One)되는 것”(17:21)이다. 이와 같이 요한과 도마는 時空을 초월한 진리인 예수, 마태와 마가 그리고 누가는 구약의 예언 성취자로서 예수를 강조하고 있다.


  예수가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20:29)고 하여 인간 몸을 지닌 자기보다는 진리자체(One)를 강조한 것과 같이, 부처도 진실로 (dharma)을 보는 자는 나를 보며, 나를 본 자는 진리를 본다고 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은 어느 때와 어느 장소에 정하여져 있는 진리(그리스도)가 아니라, 개개인의 내면에 하나(One)의 진리가 이미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라고”(靈眼, 13:16)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老子(진리)보아도 볼 수 없는 것을 가늠할 수 없으므로 모두 하나(One)로 여긴다”(道德經 14)고 하였다. 따라서 진리(One)의 세계는 어떤 사념의 파도도 없는 침묵이며, 時空이 사라진 세계이다.



하나(One)의 진리인 (그리스도)만이 존재한다”(12:32)고 하는 不二의 진리는 부처(佛性)란 결국 우주를 몸으로 한다”(十方如來 法界身)법신(One)을 알고 보니 일물(一物)도 지님 없고, 근본인 제 성품은 천진한 부처”(증도가)라는 불교와 통한다. 아인슈타인은 입자의 질량은 파동의 에너지와 동일하고, 우주는 따로 떼어질 수 없는 에너지의 역동적인 그물()이다”(E=mc²)라는 하나(One)의 진리”(神性, 佛性)를 증명하였다. 용수(龍樹)보살은 佛性(神性) 외는 아무것도 없다는 하나(One)의 진리를 인연으로 생긴 모든 것은 곧 바로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중론) 즉 헛되고 헛된 허상(虛相)이라고 하였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