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너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희를 더럽히지 않지만 너희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히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다”(도마복음 14:3). 



  우리를 더럽히는 건 밖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며, 안으로 무엇을 들이는가가 아니라 안으로부터 무엇을 내어 놓는가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내놓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본질과 존재의 향기”(One)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존재(One) 안에 중심을 내리고 있다면, 무엇이든 변화시키고, 변형시키는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즉 우리가 부분(ego)이 아닌 전체적인 깨달음의 관점(One)에서 살 때 집착으로 환희의 삶을 누린다.


  우리는 금기하는 음식을 먹는다고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ego)에서 나오는 것”(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들이 우리를 더럽힌다. 왜냐하면 외부의 것들은 전체성인 진리를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경험의 대상인 현상과 이원성의 형식적 종교”(ego)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오직 하나(One)만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영적)인 사람은 언제나 전체(All)를 보고, 세속적인 사람은 언제나 부분을 본다.


  마음속에서 생기는 이원론적 ego 집착과 탐욕의 허상을 제거하고, “마음이 無心으로 청결해진 사람”(true Self)만이 전체성(All)인 영원한 하나님(實相)을 본다(5:8). 이렇게 마음(ego)의 작용은 우리를 더럽힐 뿐만 아니라, 또한 깨끗하게 한다. 나그함마디의 문서중 하나인 구세주와의 대화에서는 몸의 등불은 마음이며, 너희 내면에 있는 것이 제대로 보존되고 있는 한, 너희 몸은 밝게 빛이 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자기(ego)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ego)를 지고 나(One)를 따르라”(9:23)고 말씀하셨다. 즉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ego)를 짊어져야 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질 타자는 필요하지 않으며, ego의 죄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회개가 있다. 또한 (ego)의 결과”(因果應報, 6:7)인 윤회(輪廻)*는 용서와 사랑의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준다는 근본주의 흑백논리의 모순을 해소한다.

 



*  윤회(輪廻)와 영혼선재설(3:13)은 니케아 공의회(325)까지 핵심 교리였으며, 우리는 주에게로 돌아갈 때”(11: 36)까지는 지상에서 윤회한다(4:5-6, 17:10-13). 야고보는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3:6)라고 하여, (퓌르, ego)이 온 몸(소마)을 더럽히고 윤회한다고 하였다. 예수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도우려 이 세상에 왔다”(마리아복음), 또한 윤회는 영원히 변화하는 연속적인 의 법칙이다”(탈무드 임마누엘)고 말씀하셨다. 요한의 비밀서에는 개체적 영혼이 온전해질 때 환생을 멈추고 다른 육체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며, 신학자들(오리게네스, 어거스틴)도 긍정하였다.


**  신비주의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영원한 지옥의 교리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어떤 인간이라도 환생(還生)을 되풀이함으로써 궁극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요한의 비밀서에서도 환생은 차꼬(수갑)를 차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플라톤은 환생할 때 필요한 인간의 몸뚱이를 일종의 감옥으로 보았다. 예수의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마지막 까지, 에스카토스)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감옥) 나오지 못하리라”(12:59)는 말씀은 ego를 없애지 않으면, 환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가 현각대사가 깨달은 뒤에는 천지가 비어있다고 한 것 같이 깨닫게 되면 업신(業身)인 몸의 환생과 현상계는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