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더하기 둘은
글, 김 의 준 장로
하나에 둘을 더하면 무엇이 될까?
비천한 사마리아 여인도
단번에 알아맞힌 빤한 것을 가지고
예나 지금이나 오락가락 하는 건 왜일까
태초부터 계시고
다윗도 주님이라 부른 그분을
시공에 매이지 않는 무한한 분이라서
옹색한 머리로는 헷갈리는 걸까
그 옛날 지구 한 구석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그 허물 같은 것에 매달려
껍데기와 알맹이를
분간 못하는 어리석음이여.
억지로 쥐어짠다고
백골에서 피 한 방울 나올까
밤낮 케케묵은 족보를 들춰 본들
별 수 있을까
그분은 몸소 세상 가운데 오시고자
부득불不得不 사람을 입으신 분
하나에 둘을 더하면 그분이요
만물을 스스로 지으신 전능자
입고 온 유한한 것 훌훌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분
모든 것 안팎에 고루 계시고
자기 안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하시는 진리.
"시공에 매이지 않는 무한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공안에서 해석하려는 無知를 벗어나지 못하면 즉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면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장로님의 詩는 우리들의 신앙을 새롭게 합니다.
예수님의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요 13:2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 11:45)고 하신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주적, 보편적, 신앙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born, I Am. 요 5:58)의 구절에서 아브라함은 시간 속에 있기에 "있지"않고 "있었다"인 반면에 "I Am"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자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주님과 같이 하나되어"(요 17:21) 거듭나서 영원한 빛 속에 거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으며" "있었다"와 "있을 것이다"의 생성에 결코 종속되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