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거짓 자아(ego)가 사라지게 하여, 참된 너희 자신이 되고, 나그네가 되어라”(도마복음 42).


  우리는 비이원성의 참된 자신인 神性(참나)을 자각하여, 현상계(ego)를 헛된 것으로 보는 지나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물질은 에너지로 환원된다는 과학 법칙처럼 물질은 마음의 산물이며, 몸과 마음 그리고 모든 것은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헛되다(諸法無常). 지금 나그네이지만 본향(One)을 찾게 되는(11:13), “이기는 자(깨달은 자)그가 성전을 다시 나가지 않을 때”(3:12) 윤회하는 ()의 법칙’*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나그네이지만 먼저 겉사람(我相)을 버리고 본래의 속사람(그리스도) 회복하여야 한다. 이러한 행위가 온전한 십일조(데카토오)를 창고에 들여야 한다”(3:10)는 의미이다. 실상 텅 빈’() 모든 현상은 마음(ego)의 그림자로서 다만 마음에서 일어났다가 마음에서 없어진다. 그러나 무한한 생명’(One)연기적(緣起的)으로 볼 때 텅 비었지만, ‘없는 것 같으면서 있는 무한한 힘(佛性, true Self)이다”(實空非空).


  물리학자인 어윈 슈뢰딩거는 우리가 인지하는 다양성은 겉모습일 뿐이며, 결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증명하였다.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는 나비의 꿈’(胡蝶之夢)을 통해 겉모습의 마음’(허상, ego)을 초월하면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게 된다는 실상을 설명한다. 즉 겉모습만을 보는 분별의 마음이 없어짐으로써 실상의 세계’(One)가 되며, 또한 모든 사물이 한결같게’(One) 여겨질 때 자연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게 된다.

 


*  업()의 법칙에 의한 윤회는 육신이 죽고 나서 업신(業身)의 영혼이 法身()과 하나가 될 때 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말과 생각은 하나의 사건으로 무의식에 저장되어 업()과 운명이 되며, ‘()의 흐름’(삶의 수레바퀴, 3:6)은 반복되므로 사후에도 작용한다(11:14). 심는 대로 거두는”(25:26, 6:7) 하나님()의 법칙은 모든 존재는 한 몸이라는 연기법에 의한 것이며, 여러 사람 같이 짓는 공업(共業)은 국가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불교의 육도윤회는 ·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이며, 니체의 영겁회귀사상과 통한다. 윤회(환생)는 영혼이 성장하게끔 많은 기회를 부여하여 결국 천국에 이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