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잔의 바깥을 씻는가? 안을 만드신 이가 바깥도 만드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도마복음 89).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의 이원성(ego)을 초월하는 하나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타, 주객 등의 다양한 생각을 넘어 내면의 神性(성령)을 밝히는 것’(直觀)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진리의 빛(無量光佛)이 언제나 비치고 있지만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그 빛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1:9-10). 각자(覺者)인 예수와 부처처럼 영적인 눈(靈眼)이 열리게 되면 우주와 하나(One)가 되며, 우파니샤드에서도 눈을 뜬 자’(참나)에게는 안과 밖이 하나이고, 내면과 외면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면의 속사람(참나)을 깨닫게 되면 헛된 겉사람(거짓 나)이 사라짐을 동시에 모두 하나(One)가 된다. 즉 바깥과 안, 하나님과 세계, 영혼과 물질 등의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말씀인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15: 17-19)는 것은 외형이 내면의 투영이라는 하나(One)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무엇이든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일 수 없고, 무엇 하나도 하나님의 외부에 있을 수 없으므로, 전체성(영적)인 하나님은 안도, 바깥도 있을 수 없는 오직 하나(One)의 진리이다.


  인격적인 범주를 초월한 (One)은 바로 그의 비타자성(非他者性)으로 인하여 여타 사물들과 구별된다. 따라서 타자인 기독교적 하나님의 개념은 하나(One)인 생명으로 재해석 되어야 하며, 과 인간의 영(眞我)나누어 질 수 없는’(不可分) 하나(One) 즉 전체로서의 하나(One)이다(道德經 28). 부처는 어리석은 자여 안이 더러우면서 밖에만 깨끗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하였고, 老子있는 것과 없는 것...소리와 울림은 서로가 있어야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앞이 있어야 뒤가 따르는 것이다”(道德經 2)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