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고 말씀하셨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육체와 마음’(五蘊皆空)을 자기라고 하는 거짓 나(ego)에 집착하면 불변하는 참나(神性)를 잃게 되지만, 거짓 나의 목숨(프시겐) 버리고 임을 깨달을 때 본래의 영원한 참나(아우텐)를 얻는다. 즉 옛사람을 죽이면 영적인 속사람(그리스도)으로 부활한다(고후 5: 17). ()불교의 다도(茶道) 정신은 자아(ego)의 죽음을 한번 겪은 후에 새로운 영적 자아로 소생하는 것’(大死一番 絶後蘇生, 6:11)이다. 이렇게 영적 자아가 완전히 발달하면 즉 육체가 완전해 지면 질병과 죽음이 사라지고 평안과 건강만이 가득해 진다.


  분별과 취사(取捨)를 좋아하는 이원성의 거짓 자기’(ego)를 버리는 자기 부정의 용기’(십자가의 길, 無心)는 막힘없이 통하는 무한한 능력의 새로운 생명(true Self)을 얻게 한다(死卽生). 우리는 개체적 자아의 목숨(ego)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야 하며”(6:25), 진리와 하나(One) 되면 남이 나이고, 내가 남이 되는 오묘한 (One)의 경지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는”(고후 4:10) ‘不二의 자리’(One)야 말로 기쁨이 넘치게 하는 영적인 경지이다.


  “육체의 ego를 버리는 자가 하나(One)인 내면의 神性(그리스도)을 찾는다는 것(16:25)은 양극(兩極)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임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우리 자신을 하나(One)의 생명(12:29)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억지로 하지 않는 것’(爲無爲)이다. 이와 같이 막힘이 없이 통하는 둘 아님’(不二)이 된다면 즉 삶을 있는 그대로 따르면 오묘한 부사의경계(不思議境界)의 천국이 나타난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One) 되는 영성을 그리스도를 내 속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을 때”(1:16)라고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