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5-26)고 말씀하셨다.



   “개체는 전체”(一卽多)이므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진리(One)의 순리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不二의 진리 안에서 생사(生死)문제 조차도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도와주는 상보적(相補的)이며, 순리적 현상이다. 더 없이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인 “자신의 생명”(true Self)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사물의 본질”(One)을 깨닫는 것이다. 예수는 “분별하는 생각”(ego)이 아니라 “현묘한 뜻에 따른 삶”(One)을 위하여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마 5:34)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은 밖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기적인 집착”(ego)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따라서 모든 문제는 자기의 의지에 있으며 또한 내면에 있는 것이므로 예수는 공중의 새와 백합화를 비유하여 “하나(One)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공중의 새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하는 영원한 “하나(One)의 생명”(true Self)은 똑 같이 우리에게도 신비롭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남전(南泉)선사는 “평상심(平常心)이 道이니라”고 하여 평상심(道)은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역(易)의 신학”(The Theology of Change)적으로 모든 생성의 과정(process)을 일으키는 변화(易)이기에 모든 존재의 “내적인 근원”(One)이 되며, “모든 것의 神이다”(롬 1:20). 즉 이 세계는 무한하고 완전한 “하나(One)의 힘”(神)에 의해 조화롭게 지배되고 움직여지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자”(陰)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陽)의 생성과 변화 속에 있으므로 고통을 통해서도 즐거움을 누린다(고후 6:8-10). 이러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One)의 진리”를 “깨달은 자”(true Self)들이 성자(聖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