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道는 바탕이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다.”

 

  “쉽다, 어렵다” 하는 것은 모두 중생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로 하는 말일 뿐이며, 본래 스스로 원만히 갖추어져 있는 大道(不二의 진리)를 모르고 한 말이다. 따라서 깨달음의 세계인 불안(佛眼: 靈眼)에서 보면 不二의 진리는 본체가 넓고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으며, 네 종교 내 종교 그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6).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 17:28)

 

  不二의 진리이신 하나님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고 무한무변(無限無邊)하시며,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출 3:14)로서 원만히 갖추어 있으므로 조금도 어렵다거나 쉽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계시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며, 편재(遍在)하신다고 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神과 같이 인간과 같은 신인동형상(神人同形相)으로나 주객을 나눈 대상화(對象化)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너희가 너희 속에 있는 그것이 열매를 맺게 하면 너희에게 있는 그것이 너희를 구할 것이로되, 너희 속에 있는 그것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면 너희 속에 없는 그것이 너희를 죽이리라”(도마복음 70)고 말씀하셨다.

 

  충만한 하나님은 밖에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도 계신다. 내면에 있는 不二의 생명인 하나님을 인지하고, 그것을 발아시켜 열매 맺도록 하면 영적 풍성함을 누린다. 그러나 참된 신성(神性: true Self)을 무시하고 생각에 얽매이게 하는 쉽고 어려움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지면 어두운 영적 죽음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