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머물러 두지 아니하면, 기억할 만한 것이 없다.”

 

  마음(不二의 진리)은 텅 빈 허공성이라 머물려고 하여도 머물 수가 없어 당연히 기억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즉 모든 것들은 변하며(諸行無常), 나 또한 변한다(諸法無我) 따라서 모든 삶은 고통이다(一切皆苦).

모든 존재는 무상(無常)하여 항상함이 없기 때문에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정해진 모습이 없고(無相), 머물 곳이 없으며(無住), 생각할 것이 없다(無念)고 하였다. 머무는 것이 있다면 다만 일회용이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 자 하심이라”(요 9:1-3).

 

  예수님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그 누구의 죄때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왜냐하면 “순수한 마음”(不二의 진리)은 텅 빈 허공성이라 죄의 실체가 머물려고 하여도 머물 수가 없어 당연히 기억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영원한 진리의 삶은 의심과 망설임이 사라지고 순수한 믿음으로 자유로운 한 영혼이 된다.

  이러한 不二의 진리적 삶은 양극이 하나(One)가 되고 이원론이 사라지는 것이다. 전체(One)로 거듭난 새사람에게는 죄인과 성인의 구별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양쪽 모두 이원론적으로 나누어 지기 때문이다. 개념적인 神도 죽고 악마고 죽는다. 이것도 역시 이원론에 속하는 것이며, 생각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자는 복이 있도다. 만약 그대들이 나의 제자들이 되고, 나의 말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돌들도 그대들을 섬길 것이다. 그대들을 위해 준비된 낙원에는 다섯 그루의 나무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여름이나 겨울에 변하지 않으며, 그것들의 잎사귀들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않는 생명을 발견할 것이다”(도마복음 19).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고 하였다.그러나 예수님은 도마복음에서 변하지 않으며 떨어지지 않는 천국의 다섯 그루의 나무의 예화를 통해 인간이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진리를 알고 깨달음으로 이루어 진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I AM)”(요한복음 8:58)고 말씀하심으로 스스로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게 된 영원한 자”(true Self)임을 밝히셨다. 모든 것들은 변하며(諸行無常), 나(小我: ego) 또한 변하지만(諸法無我) 거듭남으로 “태어나지도 창조되지도 않은 자”(大我: true Self)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게 된 자”는 태어난 적이 없는 자, 우리의 참나(true Self) 자리, 시공(時空)이 끊어진 초월적인 자리이다. 모세에게 대답한 하나님의 이름인 “스스로 있는 자”(출 4:13)가 바로 이 자리를 말한다. 즉 人子, 그리스도, 신성(神性), 불성(佛性), 道, Brahman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