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같은 의심이 깨끗이 사라지면, 올바른 믿음이 조화롭게 곧아진다.”

 

  여우같은 의심이란 내가 부처임을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완전함을 버리고 밖에서 구함을 찾는 것이다. 밖으로 향하는 의심스러운 마음이 깨끗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고 나면 곧은 믿음이 바르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올바른 믿음인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참 주인공에 대한 믿음, 不二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바르게 서야 한다. 이러한 참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임제선사(臨濟禪士)는 “가는 곳마다 참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 모두가 참 진리(佛國土)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고 하여 어디서나 “참 자기”(true Self)의 주인공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

 

  예수님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 7:32)고 말씀하셨다.

 

  겉사람(ego)이 일으키는 분별 시비와 망상으로 인하여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여우같은 의심을 내며 이원론으로 방황하게 만드는 겉사람(ego)이 사라지면, 비 이원론인 “내면의 神性”(true Self)으로 인하여 믿음이 바르게 된다. 不二인 진리의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이르노니, 만약 집 주인이 도둑이 올 것을 알면 그 주인은 도둑이 오기 전에 경계하여 그 도둑이 집에 들어와 소유물을 훔쳐가지 못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에 대해 경계하라 큰 힘으로 준비하여 도둑이 너희를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기다리는 환란이 이를 것을 인함이라 너희 중에 깨닫는 자가 있도록 하라”(도마복음 21:2).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가 알지 못함 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 24:43)의 일반적인 해석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시키고 있다. 그러나 시공(時空)을 초월한 보편적이며, “가거나, 오는 것이 없는”(不去不來) 예수님은 재림과는 관계가 없다(요 14:9). 

  여기서 도둑인 ego(ahamkara)는 不二인 진리의 깨달음을 가로막고 파괴하는 마음의 집착, 분별 시비, 망상 등의 잘못된 생각의 힘이다. ego에 대한 경계와 주의를 통하여 의심이 사라지면 不二의 神性(true Self)인 영원한 천국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깨어있어야 하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천사와 예언자들이 너희에게 와서, 너희 소유의 것들을 돌려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너의 수중에 있는 것을 저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너희 자신에게 말하라. ‘그들은 언제 와서 그들의 것을 가져갈까?”(도마복음 88).

 

  천사와 예언자의 둘은 일반적인 의식보다 더 높은 수준의 하나(One)된 의식이다. 우리는 이 의식(One)으로 본래부터 우리의 것인 영원한 내면의 神性(true Self)을 깨닫도록 하여, 不二의 진리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하나(One)인 진리의 광명을 잃지 않기 위하여 진실된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