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마음을 계발하면 행한 것들이 모두 쉬어진다.”

  내 마음이 일체에 평등하면 조금도 차별 망견을 찾아볼 수 없고 평화롭게 된다는 것이다. 문득 깨달아 마음이 분별 시비가 없는 평등한 경지(頓悟)에 이르면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즉 짓고 짓는 바가 다 함게 쉬게 되어 주관과 객관, 미움과 애착 등이 “둘이 아닌”(不二)  즉  하나(One)의 진리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8)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을 서로 나누는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까닭은 그들이 육체와 영혼을 에너지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고, 대상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것과 같이 육체는 끊임없는 에너지의 파동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의식이 영적인 성숙을 가로막으며,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여 평화롭게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원론적으로 분별 시비하는 겉사람(ego)을 소멸하고 내면에 있는 평등한 속사람(不二의 진리)을 찾으면 모든 염려가 사라지며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면 그 후에야 밝히 보고 네 형제의 눈속의 티끌을 제거해 줄 수 있을 만큼 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도마복음 26).

 

  너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나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그곳에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오직 허구를 떨쳐 버릴 때만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분별 시비심을 일으키는 허구적인 겉사람(ego)을 소멸하여 사물을 평등하게 보는 하나(One)의 진리를 깨달을 때 모든 것이 쉬워져 상대방을 분명하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거칠게 비판하는 것은 가끔 우리가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는 스스로 싫어하는 것의 투사(投射)라 할 수 있기에 이기적인 ego에 의한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순수함과 용서함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순수함, 용서, 사랑은 不二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본질적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