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는 예수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Immanuel)는 것을 자각할 때 바로 하나님과 하나(One)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깊은 수준은 내가 대상적인 하나님”(ego)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神性)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이며, 예수의 기도대로 하나님과 나와 하나(One)가 되는 신비로운 체험이다(17:21).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언제나 느끼면서 기쁨에 가득 찬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한다(處處佛像 事事佛供).


  우리는 망령된 견해인 양변(兩邊)을 대표하는 옳다(), 그르다()”의 이원론적 마음인 ego(因果의 껍질)를 버리고, 본마음(true Self)을 회복하여 진리와 하나”(One)가 될 때 임마누엘(Immanuel)이 된다. 이와 같이 veil마음 렌즈의 먼지”(ego)를 제거하고 구원의 빛(One)”을 받아들이는 수행방법”*은 종교와 문화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 바가바드 기따에서는 수행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감각을 자신의 통제 아래로 데려와야 하며, 고요히 앉아서 바수데바()인 나, 곧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모든 것의 본질인 참나()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바로 그분(One)이다'라고 생각하며 앉아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은 고요히 앉아서 스스로 본래의 자성”(true Self)이 부처(One)라는 확신을 가지고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One)의 명호(名號)를 생각()하는 염불선(念佛禪)合一을 위하여 하나님(One)만을 생각하는 신비주의 기독교의 묵상기도와 비슷하다. 이와 같이 수행이란 본래 상태”(true Self)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실재가 아닌 장애물(ego)을 떼어내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