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10:24)고 말씀하셨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보지 못한 모든 것의 본질을 보며, 아무 모양이 없는 하나(One)를 보는 눈”(靈眼)은 행복하다. 제자들은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보는 자기의 참모습(true Self)을 자각한 자들이다. 우리는 안개와 같은 허상인 겉모습(ego)에 속아서 불변하는 생명의 실상(實相)”(true Self)인 참모습(One)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주관과 객관의 이원적 사유”(ego) 때문에 원래 전체(All)한 가지로 ”(One)하였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궁극적 깨달음”(靈眼)으로 본다는 것은 독립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개인의 의식”(ego)보편적 의식인 참나”(眞我, true Self)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나(One)의 경지이다. 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는 주관과 객관, 몸과 영혼 등으로 분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증명하였다. 예수는 이러한 하나의 생명”(One)을 보는 행복한 눈에 대하여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셨다”(11: 25).


   “가만히 있어라”(Be still, 46:10)의 구절은 보는 자神性(true Self)을 깨닫기 위한 즉 자신의 참자아()임을 깨닫는 데에는 고요함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항상 존재하는 실재(true Self)는 마음이 동()하면 가려져 사라지고, 번뇌하는 마음이 끊어졌을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게 된다”(30:15). 이렇게 조용히 아상(我相)의 근원(One)을 파고드는 탐구를 통해서 마음이 내면(바탕)으로 향해지면, “마음의 나쁜 습관인 원습(原習)”들은 저절로 소멸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