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1-32)고 말씀하셨다.

 

   “진리(One)를 안다는 것”*(기노스코)은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것이며 이 때 본래 성품(true Self)의 자리가 되어 자유롭게 된다. 즉 원래부터 속박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자유인이다. 둘이 아닌 진리(One)를 안다는 것은 의 거짓 믿음을 벗어나 근원인 참나(true Self)가 되는 것이며, 순수한 본래 성품의 실체()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이렇게 갈애(탐욕)가 없어지는 해탈(자유)로서 괴로움을 끊고 생로병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리는 주객(主客), 희비(喜悲)의 상반되는 쌍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경지(One)이며, 양자역학의 주객이 둘이 아니라는 관찰자 효과가 증명하고 있다. 바로 해탈(One)의 체험으로 일체 걸림이 없는 자는 단박에 生死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화엄경). 우리는 내적 평정의 획득 방법인 좌선을 통하여 개체적인 나”(ego)로부터 본래의 생명”(法身, One)을 회복하여 절대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이원성의 망념(妄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참다운 자유인은 자기(true Self)를 바로 깨닫고, 시공간의 인과법칙에서 비롯된 모든 고통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자”(One)이다. 사물의 본질(One)을 꿰뚫어 본 공자(孔子) 칠십이 되어 대 자유의 경지(true Self) 되었기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해도 진리()에 맞았다”(從心所欲不踰矩)고 하였다. 이렇게 모든 현상을 하나(One)로 바라보는 것만이 변화하는 것들에 대한 순리로서 흥()하게 하는 삶이다”(順天者興 逆天者亡).


   `1r부처는 일체의 을 여윈 , 그러면서도 동시에 일체의 을 수용하는 의 지혜(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 진리의 자유”(One)를 찾으며, 老子는 대 자유(moksa)의 절대경지 (One)와의 合一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또한 장자(莊子)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음양의 조화를 파악하여 무궁한 경지에 노니는데 무엇에 의지함이 있겠는가!(逍遙遊)라고 자유로운 (One)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는 이원성의 교리로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One)의 체험을 통하여 이미 있는 자유(본성)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진리(One)를 안다는 것은 깨달음으로 진리와 하나(One)가 되는 것이며, 우리의 본성 즉 둘이 아닌 절대적 차원”(One)(부처)이 되어 자유를 누리게 된다(禪佛敎). 이와 반대로 상대적 차원”(ego)은 이원론적인 두 가지 현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고통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통하여 는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존재 자체인 그리스도(神性)임을 자각하여야 한다(15:27). 이러한 절대차원(One)의 믿음과 깨달음을 체험하게 되면 우주의 道理에 부합하는 자가 되어, 삶 전체는 온통 기쁨과 사랑으로 넘치게 된다. 그러므로 우빠니샤드는 아트만()과 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앎으로써 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물질()은 연기의 이치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므로 과 같으며, 만물의 본성()이 인연에 의하여 만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4:22). 老子천하의 모든 존재는 에서 생겨났고, 에서 생겨났다”(道德經 40)고 하여 ”(One)을 설명하고 있다. 물리학자인 닐스 보어는 우리가 실재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실재라고 여길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양자역학은 물질이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지니며, 측정당하기 전에는 에너지()이지만, 측정하면 입자()가 된다는관찰자 효과”(입자의 관찰자 영향), 사물의 이중성을 통하여 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