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한 사마리아인이 양을 끌고 가는 것을 보시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저 사람이 어찌하여 양을 끌고 가는가?”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잡아서 먹으려 하나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양이 살아 있을 때는 저가 그것을 먹지 못하거니와, 오로지 저가 양을 죽여 시체가 된 다음에야 먹을 수 있느니라.” 제자들이 이르되, “그럴 수밖에 없나이다.” 그가 저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너희도 시체가 되어 먹히는 일이 없도록 안식처를 찾아야 하리라”(도마복음 60).

 

   너희가 주관과 객관의 이원성인 겉 사람”(ego)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너희 안에 있는 양()영원한 생명(true Self)”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침묵과 고요의 상태에서 時空을 초월한 절대적인 내면의 안식처”(true Self)를 찾지 못한다면 모든 생애는 무의미하게 되어 시체로 잡아먹히게 된다. 그러므로 보이는 허무하게 죽는 삶”(ego)을 마치기 전에 깨어나서 보이지 않고, 죽지 않는 神性을 회복하여야 한다(고후 4:18).


   산란한 마음을 쉬고 유한 상대적인 생각을 떠나서 태어나기 이전의 원래 상태인 神性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삼매(三昧)에 들어야 한다. 삼매()는 하나(One)의 진리인 神性(佛性)*을 자각하여 온 누리가 하나(One)임과 과 인간의 근본이 둘이 아닌 하나(One)임을 알게 한다. 이러한 쉼(One)은 구원을 의미하며, 모든 악의 근원인 이원성(ego)을 제거함으로써 우주의 근원인 생명”(One)있는 그대로 바라보는”(직관) 축복과 환희의 경지이다.


   천국은 미래적 사건으로서 대망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재적 실재(實在)로서 하나(One)神性(佛性)의 자각으로 체험하는 영원한 생명의 안식처”(One)이다. 즉 동양의 종교들에서와 같이 지금 이대로 자신이 神性(生命)이라는 것을 자각하여 참된 인간”(One)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배(수행)하는 목적은 집착(ego)을 벗어나 내면의 神性에 더욱 가까이 감으로 기쁨과 평안으로 인도되는”(55:12) 자아실현(One)의 체험이다.



*   佛性(神性, true Self)온갖 나고 없어지는”(生滅) “무상한 모양”(無常相)을 관찰하면서 깨닫는 하나 됨”(One)이다. 즉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不生不滅),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不一不異), “상존하지도 않고 단절도 없으며”(不常不斷),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不來不出) 八不中道의 오묘한 경지이다(中論頌). 따라서 우주에 비본질적인 것”(ego)은 끊임없이 있다가 사라지지만, “본질적인 것”(One)은 영원함으로 진리인 부처의 생명”(佛性, 神性)만 실존한다고 할 수 있다(佛性一元論). 현대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물질(時空)은 없는 것이며, 하나(One)의 순수에너지인 佛性(神性)만 있을 뿐이다(諸法實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