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었다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9:59-62).


  이원성인 집착(ego)으로 하나님과 끊어진 죽은 자 즉 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有爲)둘이 아닌 세계’(無爲)의 참나(One)로 재탄생하여 천국을 전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죽은 자를 구멍이 뚫려 감각이 자리를 잡는 혼돈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는 죽은 자’(ego)를 버리고 나(true Self)를 좇으며, 하나(One)가 아니면 하나님의 독생자(神性)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다”(3:18)고 하셨다.


  엑카르트는 왜 그대 자신 속에 머물지 않고, 그대 자신의 선()을 붙잡지 않는가? 그대는 본질적으로 그대 안에 모든 진리(One)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천국의 보화”(진리, 13:44)를 외면하고 자기 밖에서 무언가를 찾는 오직 타력적인 삶’(ego)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누군가 자력으로 그 이름을 얻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true Self)이라는 이름을 빼앗길 것이다”(빌립복음 65)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너희가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17:23)고 한 것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One)의 보편적인 ”(Christ, 3:11)은 타 종교 속에도 암묵적으로 실재하고 있다(1:20). 따라서 불교도 하나(One)의 진리를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 바탕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시공간을 초월한 영성의 차원에서 서로가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하나의 진리에 접근하는 데는 많은 길들이 있다(大道無門, 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