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비유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8:4-8).


  씨가 뿌려졌다는 것은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을 의미하고 결실을 맺는 것은 목적지인 천국에 들어감을 말한다. 뿌려진 씨앗이 좋은 땅인 하나(One)인 영(靈)의 사람’(true Self)에게 심겨지면 천국(光明)이 드러나지만 그러나 분별하는 육의 사람’(ego)에게는 천국(One)을 잃게 된다. 우리는 내면에 있는 본질의 씨앗’(神性)이 결실을 맺는 천국(One)을 위하여 이원성인 ego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집착, 분별 등)을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한 귀 있는 자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잘 듣도록 하여야 한다.


  우파니샤드에서도 모든 개체는 영원한 내면적 자아(true Self)인 아트만(Atman)이라고 하는 초월자 브라흐만(Brahman)의 씨앗(생명, One)을 품고 있다고 한다. 이 씨앗이 결실을 맺게 되면 천국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One)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1:8)라고 하심으로 스스로 우주와 하나(One)되어 시공간을 초월한 不二의 진리임을 나타내셨다. 따라서 싹을 틔우는 것이 씨앗의 운명이며, 또한 드넓은 자유의 하늘’(One)로 비상하기 위하여 새는 먼저 알의 껍질(ego)을 깨고 나와야 한다.


  일체의 사물은 모두가 서로 반대이면서 서로를 이루어주는 조화의 관계에서 성립하며,  단독이나, 진정한 극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원적인 대립물은 있을 수 없으며, 깊은 생명의 자리는 전체성이다. 不二의 진리인 근본(One)을 얻기 위해서 변하는 거짓 자아인 개체로서의 나’(ego)와 영원한 하나(One)의 영적 자아와의 동일시를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3세기의 플로티누스는 육체와 실재(One)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꿈속에서 나타나는 허구를 실재로 착각하는 꿈꾸는 사람들과 같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