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찾으라 그러면 찾으리라. 예전에 너희가 질문한 물음에 내가 말하지 아니하였으나, 이제 내가 그것을 말하려 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묻지 않는구나.”(도마복음 92)


  도마는 마태(7:7)와 누가(11:9)처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하는 낮은 수준의 기복적인 구절이 없다. 예수는 제자들의 구도(求道) 자세에 실망하고 있다. 왜냐하면상대적인 경계’(ego)가 모두 끊어진 영원한 고향 자리인 내면의 진리(신성)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찾지 않기 때문이다. ‘찾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그 찾는 것이 본래부터 다 갖추어져 있으며, 바로 부처의 마음(신성, 불성)이며, 생명이기 때문이다(법화경).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예수의 마음(본성)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다(빌 2:5, 눅 19:10), 불가(佛家) 의 심우도(尋牛圖)에 비교하면, (참나)를 찾아 나서는 심우(尋牛)가 추적하는 것이고, 득우(得牛)가 밝혀 내기, 즉 이루어짐이다.


예수는 지난날 제자들이 미 성숙하여너희는 무한한 능력의 신()이다”( 10:34)는 사실을 물어도 대답 해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자들이 성숙하여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준비가 되었음을 인식하였다. 상대적인 경계가 모두 끊어진 영원한 진리(One)를 깨달을 수 없으므로 안타까웠으나 이제는 무 집착(One)의 예리한 칼로 감각 대상에 대한 이원적 사유인 집착(ego)의 고삐를 끊을 수 있지만, 구하지 않고 있다.

 

엑카르트Eckhart나는 확 뚫어버림(break through) 속에서신이 곧 나이고 내가 곧 신임을 느꼈으므로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던 바로 그 얼굴이다라고 하였다. 그는진리와 하나’() 되는 깨달음의 체험과 무지에서 비롯된 이원성(ego)을 제거함으로 모든기복적인 기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 현대물리학이 물질의 본질은 에너지의 광명이라고 한 것처럼 지금 충만한광명()의 세계’는 영원한 세계(One)이므로모든 시간적인 것, 지상의 것’(ego)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힌두교에서는모든 존재 속에 있는 브라흐만()을 보라. 그는 하나, 불생불멸, 무한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의식이니라. 그를 보면서 평안과 축복 속에 살라고 한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유한 상대적인 것(ego, 4:14)이 아니라, 무한 절대적인 영원한 진리 (One)이다. 그러므로 서산대사(西山大師)는부처에게 매달려 구하는 것이 있으면 부처에 얽매이는 것이며, 무엇이나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고통이 되고 마는 것이다 ”(禪家龜監)고 하였다. 무엇인가 구하는 곳에 삶의 만족이나 평안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신(부처)에게 구하면전능하며, 일체를 아시는 분무능하며, 모르는 분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신과 하나로서 신의 자녀이며, 또한 지금 여기에 천국의 완전한 세계(佛國土)가 실현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는 내재하는 실상()을 생각하며, 이미 구원받은 신의 자녀로서 감사과 행복을 받아 들이는 자세이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아시며, 필요로 하는 일체의 것이 이미 부여되어 있다. , 우리는 지금 여기 그대로 실상인 천국(극락)에 있는 것이다(생사즉열반, 6:8). 좋은 일과 나쁜 일의 분별지(分別智)를 벗어나신의 뜻 ’(God’s Will)에 맡기는 순복(헌신, 14:36)과 더불어 편재遍在하는 그리스도의 조화 안에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도마복음 77). 부처는있는 그대로 받아들임타다타라고 하며,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일어 난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일어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찾고 있는 진리가 온 천지에 충만하다는 것을 자각한 자는,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복(順服)을 통하여 천국을 체험할 수 있다(無我,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