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풍요롭게 된 자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고, 힘을 가진 자로  하여금  그것을  버리도록  하라.”(도마복음 81장)

  풍요롭게 된 자는 만물에 충만한 ‘자신(본성)을 알게 된 자’로서 스스로 만족하는 자이며(知足自富, 도덕경 33장), 타인을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에게 왕으로 다스리게 된다(天上天下唯 我獨尊, 요 18:37). 그는 시공간의 원근遠近이 서로 융합되어 너와 내가 막힘이 없는 ‘자유자재한 내면의 신성(참나)을 깨달은 자’이다. 이러
한 신성의 평등무차별한 영역은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이원적 분별( ego)을 벗어난 하나(One)의 영적세계이 며 , 상(相 )과 시간을 떠나서 흐름에 맡겨 걸림이 없는 무심의 세계이다(傳心法要). 

  만물에 충만해 있는 신성(천국)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마치 지금 서울에 있는 사람이 서울로 가는 길을 모른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지한 세속적 힘’은 일시적인 가상의 거짓 부요이다. 영원한 실상(참나)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으로 교만과 분별하는 거 짓 나(ego)의 힘을 버려야 한다(막 10:43).  장자莊子는 ‘거짓 나’(ego)를 부정하고 ‘온 우주와 하나(One)된 경지’(참나)는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우주적 경지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노자老子는 “만족할 줄 알아서 만족해 하면 늘 만족스러울 수 있다”(故知足之足 常足 矣, 도덕경 46장 )고 하였다.

  세상의 실재성은 착각에 불과한 환幻이며,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약 4:14). 마음이 실제로는 밧줄인 것을 뱀으로 지각할 때 그것은 감각 기관들이 실재하는 바탕 위에 상상적인 이미지를 투사한 것이다. 투사란 실재하는 것 위에 거짓 된 것의 겉 모습이 나타나는 덧씌움(幻)이다. ‘바시슈타 요가’에서는 “실상인 진리( 참나)는 우리에게 숨겨져 있고, 꿈과 같은 허상(거짓 나)이 참인 양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도 진동하는 에너지의 덩어리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보는 것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비어있는 공이다(諸法空),.  

  꿈과 그림자와 같이 사실 없는 것’(空)을 있는 것으로 바로 보지 못하는 분별심(ego)이 죄이다(요9:41). 바울은 ‘마음의 변화 ’(회개)를 통하여 “눈에서 비늘(허상)같은 것이 벗어져  신성(실상)을 바로 보게 된 것이다”(행 9:18).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마 4:10)고 하셨다. 신 이외에 어떤 자도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탄은 신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물질적인 것에 집착된 허상이며, 전체성인 실상의 천국을 가로막고 있다 . 예수의 말씀은 '사탄은 없다'고 하는 의미를 행동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불교의 법화경(法華 經)은 깨달음으로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충만한 현상세계(허상)의 깊숙한 곳에서 불타지 않는 영원한 금강불괴(金剛不壞)인  실상의 극락세계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