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말씀하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16:16, 20-22).

 

  거듭나게 되면 보이는 몸(예수)은 보이지 않게 되고, 안 보이던 영적 예수는 보이게 되며, 재림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물질은 본래 인 것을 알아 공간의 멈과 가까움이 서로 융합하는 신비 체험으로 새사람이 탄생한다. 이 때 비이원적 영()의 현존을 통해 하나(One)인 진리의 무한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즉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스러운 진통을 통해 아이를 낳지만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유한 상대인 시공간 안의 것’(ego)인 인간의 언어(言語)와 사고(思考)무한 절대인 진리(One)이며, 생명인 하나님’(예수)을 완전히 인식할 수 없고 또한 어떤 증명과 반증을 할 수 없다. 이원적 사유와 상대 유한적인 반쪽 진리’(ego)에 바탕을 둔 서구 사상은 不二의 진리인 전체성을 나타내지 못한다. 이원성으로 나누는 것(ego)이 아닌 비이원성의 진리를 자각할 때 영원한 기쁨의 체험은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진리(One)는 이원론적 사유의 집착(ego)이 사라진 무념무상(無念無想)이기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으며(信心銘), 또한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것이다(벧후 3:8). 무한한 진리의 세계는 절대 무차별로서 언제나 한결같아 변동이 없고, “과거, 현재, 미래도 잡을 수 없다”(금강경). 과거와 미래는 생각의 대상으로 오직 지금 여기만이 영원으로 존재하며, 종말이란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옛 것(ego)의 끝인 성령의 거듭남(On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