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6:28)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염려(ego)를 버리고, (내면, 아그로스)의 백합화(그리스도)를 보면서 그 조화롭고, 경이로운 내면의 본질을 깨닫고(회개), 無爲마음 밭에 그리스도(true Self)가 피어나도록 하여야 한다. 노자는 란 자연을 벗으로 삼고 맑고 고요하며 은밀하게 정()과 기()를 운행하여 만물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한다(도덕경 3), 유교에서는 우주 만물이 하나(One)의 태극을 갖추고, 스스로 그러한 자연법칙에 있다”(統體一太極)고 한다.


  우리가 육체와 영()을 서로 나누어 이원성으로 생각하는 까닭은 주객(主客)을 초월하는 하나(One)의 관점이 아닌, 주객을 나누는 분별적 관점(ego)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현대 물리학이 증명하듯 육체는 끊임없는 에너지(세포)의 파동(진동)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다(色卽是空). 육체와 영()은 둘이면서 하나(One)不一不二이므로 진리를 벗어난 이원성(ego)의 염려가 영적인 성숙과 평안을 방해하며 고통을 초래하게 하는 원인이다.


  회개를 통하여 모든 염려를 버리고 하나(One)의 본래적 자아인 속사람을 회복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는 것이다바가바드 기따에서도 모든 갈망을 여의고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사람, ‘나의 것이라는 느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평화를 얻는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의 흐름에 부드럽게 순응하는 깨달음의 삶으로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와 같이 삶을 놀이로, 또한 축제로 즐겨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크티시스)인 하나(One)神性(佛性)의 드러남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5:45)을 통하여 기독교와 다른 길인 불교에서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방인(불교)과 유대인이 모두 한(One)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을 수 있고”(2:18),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8:1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므로”(2:4)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은 보편적 진리를 한정하는 교리이다. 신학자 라아너는 진리를 따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에도 영원토록 동일한 주님’(13:8)의 은총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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