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두 가지를 이룸이 아니거늘 어찌 하나가 있겠는가?”

 

  움직이다가 멈추고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기 때문에 이미 두 가지를 이룬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하나(One)가 있겠는가? 움직임과 멈춤이 둘이라고 하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니 꿈을 깨는 불안(佛眼, 10:23)이 열리면 둘이라는 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분별의 습관적인 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둘이 아닌 불이법문(不二法門)이 강조되고 있으며, ‘존재의 본질’(One)은 일원성이 아니라 둘이 아니다’(不二, advaita)라고도 한다.


  ‘전체(All)가 곧 하나(One)’인데 억지로 이름 붙여서 하나(One)이지 전체(All)마저도 잊어버린 그러한 자리를 하나(One)인들 어찌 있을 것인가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불교적 표현으로 또한 비었다고 해서 空空이라 한다. 空空의 자리’(One)무아(無我)’에 대하여 여래(如來)실상(實相)이 아닌 것을 통달(通達)하여 모든 것에 걸리고 막히지 않는 통달 무아법자’(通達 無我法者)를 일러 보살이라고 한다”(금강경)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