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화 있을 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6:25)고 말씀하셨다.


  웃으면 그 웃음의 꽁무니를 따라 눈물이 따라 나오는 것이 삼라만상의 참모습(One)으로 이 화()가 되고, ()이 된다(轉禍爲福).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미움이 들어오고 친구를 얻으면 한 명의 적이 등장한다. 행복해지면 어딘가 등 뒤에서, 뒷문에서 불행이 스며든다. 이와 같이 삶이란 항상 대립물이 함축되어 있으며, 대립을 통하여 존재한다. 현대물리학(양자 얽힘)이 증명하듯이 진리(One)의 관점’(바탕)에서는 항상 음()과 양(), 과 화(), 행복과 불행 등의 대립물이 서로 상관적인 관계 하에서 성립하고 있다.


  예수는 분별을 벗어나 전체성인 不二의 진리를 강조하였고, “움직인다거나 그쳐 있다거나, 웃거나 울거나모두 전체성(All)인 진리(實相) 속에서 일어난다고 하셨다. 모든 것은 양극이므로 생각에 의한 분별(ego)을 벗어나 즉 無心으로 본질(영성)을 보아야 한다. “진리를 안다(8:32)는 것은 모든 일에서 그 전체를 깨닫고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예수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다”(3:11)는 不二의 진리를 말씀하였다. 이와 같이 깨달은 사람”(One)의 눈으로 보면 산과 나무 등 모든 것들이 다 神性(佛性)이다.


  “영원한 진리(One)의 관점”(無心)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하나(One)이므로 행복과 슬픔, 평안과 환난 등의 어떤 쌍들로 나누어 질 수 없다(45:7). 죽음 다음에는 새로운 탄생이 있어(滅卽生), 불행이 지나가면 행복이 찾아오기에 모든 것이 서로 다르되 둘이 아니다”(異而不二). 즉 진리(One)는 언제나 차별 없는 전체성이므로 유신론(有神論)*, 무신론(無神論)”등 스스로 만든 교리와 개념을 버려야 한다. 따라서 샹까라가 지고의 진리(One)를 모르면 경전 공부는 헛된 것이다고 주장한 것과 같이 이분법적인 교리를 벗어나야 한다.

 


*  유신론(有神論)을 주장하는 자들은 존재()를 항상 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과정신학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존재자체는 생성력(One)과 일치하지만, 존재()는 이원론적 사유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또한 그들이 신비주의적인 불교나 대부분의 동양종교를 무신론(無神論)이라고 오해하는 이유는 동양종교가 현상적 존재()를 부인하고 존재자체를 궁극적 실재()로 보기 때문이다. 일원론을 주장하는 불교에서는 은 존재자체이고 달을 지적하는 은 존재이며(指月), 은 모든 것이 만나는 하나(One)이다. 이러한 은 고정적인 실체성을 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릇된 분별을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목표로 삼는 실천적인 이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