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말씀하셨다. ‘너희 안에 있는 너희 아버지의 증거가 무엇이냐?’고 그들이 물으면, ‘그것은 움직임(movement)과 쉼(repose)이니라’이라고 대답하라”(도마복음 50:2).



   “不二의 진리를 깨달은 자”(true Self)가 내면에서 체험하는 하나님(One)의 증거인 “움직임과 쉼”은 음양(陰陽)과 마찬가지로 차별을 넘어선 평화와 조화인 “영원한 진리의 상징” (One)이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도 자기생명(ego)의 부정과 “참 생명”(true Self)의 회복이며, “하나(One)인 진리”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따라서 빌립은 “주님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그 후에 부활하셨다고 말하는 자들은 잘못이다”(빌립복음 19)고 하였다.


   진리를 깨달은 “영적인 인간”은 바로 움직임(動)과 쉼(止)인 완전함을 나타내며, 삶과 죽음으로부터 초월된 “아름다운 조화를 누리는 자”(One)이다. 바울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한다”(빌 1:20)고 하여 근원적으로 生死를 하나(One)로 보고 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사가 열반이고 번뇌가 보리”(生死卽涅槃, 煩惱卽菩提)이기에 양자는 둘이 아니고 하나(One)이다. 상대성 물리학의 4차원 세계에서도 운동과 정지, 힘과 물질은 모두 상보적(相補的)인 관계이며, “통일된 세계”(One)라고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며”(고전 15:28), 모든 세계가 그의 안에 있고, 모든 우주가 그의 안에서 만나는 종합이며 화음으로서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고,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도 역시 포기하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고, 선택하지도 않으며, “하나(One)의 진리”로 깨어있음으로써 궁극적인 “하나님의 표시”(One)를 지닐 수 있다. 따라서 서로 대립되는 것이 만나는 곳에 진리(One)가 나타나기에 “하나를 택하면”(ego) 죄를 짓는 것이고, 과녁에서 빗나간 것이다. 따라서 老子는 위와 아래, 앞과 뒤는 대립적이면서 통일적이므로 “성인(聖人)은 극단적인 것을 피한다”(聖人去甚, 도덕경 29)고 하였다.